미얀마를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키워드로 첫째로 천연자원의 보고이다.
목재, 천연가스, 보석, 석유, 석탄, 광물, 전자제품의 필수 소재 '희토류' 등의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2020년 기준으로 중국, 미국에 이어 희토류 생산국 세계 3위, 천연가스 세계 10대 생산국 중 하나이자 미얀마의 옥, 루비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며 세계 생산량 90%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1960년대 초까지 세계1위 쌀 수출국이었다.
또한 13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다 보니 언어, 종교도 다양하다. 이렇게 언어,종교,자원이 많은 만큼 갈등도 많은 나라가 미얀마였다.
미얀마 식민지배 역사
영국 식민지배 시절 (1886~1942)
1886~1942년까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이 시기부터 민족 간의 갈등이 시작된다. 영국과 세 번의 치열한 전쟁을 치른 미얀마는 식민지 상태에서도 끈질긴 저항을 한다. 영국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분할 통치로 민족간의 갈등을 고조하여 서로 적대하게 만들어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수법이었다.
영국은 이렇게 소수민족간의 갈등을 고조시키며 분할통치를 하며 미얀마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미얀마인들은 독립운동을 시작한다.
이에 미얀마 독립운동가2차 세계대전 무렵 동남아에 세력을 넓히고 있던 일본으로 넘어가 미얀마의 첫 군대 '버마독립군'을 창설한다.
일본의 식민지배 시절 (1942~1945)
그리고 일본에서 전략 훈련을 받고 1942년부터 일본의 도움을 받아 영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시작하고 마침내 미얀마와 일본이 영국군을 밀어낸다. 그러나 일본은 고문, 강제노동, 위안부 동원까지 영국보다 더 가혹한 식민지배를 1942년부터 1945년한다. 일본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고 민족 갈등도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다시 영국의 지배(1945~1948)
이에 미얀마 야웅산 장군을 포함한 독립군들이 다시 영국의 힘을 빌려 일본을 몰아내고 미얀마는 3년간(1945~1948년)다시 영국의 지배로 들어간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웅 산은 영국과 독립 교섭을 시도하고 이때 아웅산이 모든 소수민족을 찾아다니며 민족 통합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파롱협정(1947년)
이렇게 아웅산은 소수민족의 처우와 의회 참여를 보장하고 자치권을 인정하는 협정을 파롱지역에서 맺게되면서 민족통합이 이루어질것이라 생각했으나 희망은 잠시뿐이었다.
아웅산의 사망과 독립
1948년 1월 4일 62년 만에 드디어 미얀마는 독립을 한다. 그러나 1947년 7월 17일 아웅산은 그토록 기다리던 독립 6개월 전에 신원불명의 인물에게 폭탄 테러로 사망(32세)한다.
우 누 정권 (1948~1962)
이후 우 누가 아웅 산을 계승해 초대 총리로 취임한다.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가 암살된 혼란 속에서 '버마 연방' 을 출범한다. 그러나 우 누가 지배를 하면서 소수민족과의 내전과 독립운동 세력의 분열이 다시 일어나면서 독립운동 동지였던 네 윈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군부를 평정한다.
버마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1962~1988)
'버마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군부 철권통치가 시작이 된것이다. 네 윈이 만든 군부 '탓마도'는 국가의 위한 군대가 아니라 버마족(인구68%)을 대변하는 단지 군경의 성격이 강했다. 탓마도는 세계에서 12번째로 큰 병력이었다.
네 윈 독재체재 (1962~2015)
네 윈 정권이 현재까지 이어져 1962년 당시 네윈 당시 최고 사령관, 현재 최고 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까지 철저한 사상교육과 감시 체계를 갖추어 군부의 권력을 위해 1962년부터 2015년까지 네 윈 이후 53년간 이어진 군부독재체제의 미얀마였다.
8888 민주 항쟁(1988)
1988년 8월 8일 8888 항쟁은 미얀마 양곤에서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대학생, 승려 등 1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그때 사망자는 최소 300~ 최대 1만 명까지 추산하고 있다.
아웅산 수지 등장
이 무렵 영국에 살던 아웅 산 수치가 아픈 모친을 간병하기 위해 귀국했을때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고 군부가 시민들을 강제 진압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미얀마의 지도자로써 정신적 지주이자 독립의 상징이 된다. 88년 항쟁으로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미얀마는 1990년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이때 아웅 산 수지가 총선에 출마 민주주의 민족동맹당(NLD)을 결성해 총선에서 압승한다. 그러나 이 선거는 부정선거라고 무효화시켜 아웅 산 수치를 15년 가택연금시킨다.
1991년 가택연금 중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이후 2010년 미얀마 총선거가 실시되고 2012년 열린 보궐선거때 가택연금에서 해제된 수지가 당선, 국회에 입성한다.
▶2015년 첫 민주 총선거에서 NLD압승 최고 지도자 자리에 아웅산 수치가 오른다. 그리고 2020년 미얀마 총선이 다시 진행되었고 이 선거에서 군부의 의석가 줄어들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2021년 02.01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다. 군부가 2020년 11월 총선은 부정선거라 규정하고 아웅 산 수치 고문 및 NLD 지도부를 구금한다 .
▶2021년 2월 2일 시민들이 불복종 운동을 시작, 각자의 자리에서 업무를 거부하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시행한다.
▶2021년 2월 22일 역대 최대 규모 '22222 혁명'이 벌어지고 거리고 수백만의 시민들이 나와 시위를 하자 군부는 통신망 차단과 유혈 지압을 시작한다.
▶2021년 3월 27일 5세 아동 포함 최소 114명 사망, 같은 날 군부는 국군의 날 호화파티를 하고 있었다. 쿠데타 발생 116일 사망자 800여 명 기록했다.
이제는 군경 내에서도 점차 학살을 거부하는 군인 이탈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의 감금 (2021)
현재 아웅산 수지는 뇌물 수수, 불법 무기(워키토키) 소지 반역죄, 자연재해관리법 위반등 총 7건의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5월 24일 첫 재판 실시했고 여기서 아웅산 수지는 NLD해산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얀마는 내전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미얀마 시위의 특징 (세손가락 의미, 시위 날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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