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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미국의 탄생(메이플라워호 청교도인 13개주 정착 과정- 하버드,예일대, 추수감사절 유래)

by 365 ^^ 2022. 3. 17.

미국의 탄생 


세계사를 배우면 빠질 수 없는 나라 미국이다. 오늘은 아메리카 식민지부터 약 200년에 가까운 미국의 시작을 알아보는 시간이다. 

 

미국 성조기 변천사

 

미국 성조기 변천사

미국의 성조기 변천사 미국의 국기,성조기를 영어로 하면 The Star-SpangledBanner (별이 빛나는 국기) 이다. 그러나 지금의 성조기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변천사가 있다. 첫번째 국기(그림 왼쪽 상

jangane.tistory.com

 

 

미국의 독립전쟁을 알아보기 전 영국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당시 영국 런던은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상공업이 발달한다. 그래서 런던을 중심으로 신대륙에 정착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당시 적극적으로 식민지 개척을 했던 스페인의 상황을 보면 스페인은 카리브해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활발하게 진출한다. 식민지로부터 약탈한 금과 은으로 막대한 부를 얻고 있었고 또한 프랑스는 1534년 북아메리카의 뉴 프랑스를 건설하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과 프랑스 식민지 상황

 

이것을 지켜보던 영국 사람들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영국은 스페인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았던 북아메리카를 선택한다. 영국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이후 북아메리카 동부 연안에 식민지를 건설하면 이득이 된다고 판단하여 1606년 12월 20일 아메리카로 출항하게 된다. 이 배가 미국 역사의 시작이다. 영국에서 출항한 이 배는 긴 항해 끝에 영국 최초의 식민지에 정착하게 되는데 영국이 들어간 곳은 버지니아였다.

 

영국 스페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동부 연안 버지니아를 개척

 

버지니아 제임스 타운 개척 (최초의 정착지 실패)

이곳은 스페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동부 연안을 개척할려고 했던 것이다. 버지니아의 배가 처음 도착한 곳은 제임스 타운이었다. 영국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건설한 최초의 항구적인 개척지로 당시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 타운은 영국인의 기대와 달리 농사짓기 힘든 땅이었고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 포우하탄족과 살육전이 계속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영국의 정착지는 황폐해졌다. 영국의 정착이 성공한 때는 1620년 청교도인에 의해서이다.

 

 

미국 정신, 사회적 근간 청교도인

미국의 정신 사회적 가치의 근간이 청교도인에서 시작되었는데 영국 국교회에 성공회의 제도와 의식의 일체를 배척하며 칼뱅주의 투철한 개혁을 주장한 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정화(purify)한다는 의미에서 성직자들이 퓨리턴(puritan)으로 자칭했고 청교도들의 생활방식은 엄격하여, 순수한 도덕, 금욕 생활, 검소한 생활을 실천했다. 

 

청교도 puritan.


술에 취하거나 욕을 하는 것이 금지되고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를 하는 것도 모두 금지되었다. 심지어 크리스마스까지 불법이라고 하여 금지했다. 성스러운 크리스마스에 오로지 종교적 활동만 허락을 했다.

 

청교도인 필그림의 교회모습
청교도인 필그림 교회내부

 

이렇게 철저한 금욕주의를 고수한 청교도들에게 위기가 닥친다. 영국의 황금기를 연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1558년에 즉위 후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통일한다. 

수장령(Act of supremacy 1534)

 

반역자가 된 청교도인

청교도들은 카톨릭의 잔재를 가지고 있는 영국의 성공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비판했고 교회 내부의 화려한 장식과 예복을 입는 성공회를 청교도들은 반대했다. 영국 국교를 중심으로 왕권 강화를 추진하려고 했던 여왕은 청교도들이 개혁을 요구하면 비판을 이어나가자 결국 엘리자베스 1세는 청교도들을 반역죄로 다스린다.

 

1603년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사후 제임스 1세가 즉위한다. 제임스 1세는 개신교 성향이 강했던 왕이다. 이에 청교도인들은 성공회가 가진 가톨릭 잔재를 제거해 달라고 청원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제임스 1세 또한 이를 불편하게 생각했다. 결국 청교도 인들의 요청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종을 강요하게 된다. 

 

 

청교도인의 네덜란드 이주
청교도들은 금욕 생활을 강조하며 일요일 오후에 하는 축구와 같은 스포츠를 타락한 것으로 간주하며 금지했다. 하지만 제임스 1세는 오히려 이를 권장하였고 이에 청교도들은 더이상 영국에서 살수 없다고 판단하여 종교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로 이주한다. 청교도인들이 도착한 곳은 레이든과 암스테르담이다. 

 


그러나 낯선 언어와 문화 때문에 정착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신들의 아이들이 자유로운 네덜란드 문화에 동화되어 종교적 신념을 잃어버릴까봐 결국 다른 땅을 찾게 된다. 

 

메이플라워호 출항

영국 플리머스 항에서 또 한번의 배가 출항하는데 이 배가 바로 메이플라워호이다. 메이플라워호 탑승객의 중심은 청교도인으로 자본가 상인 기술자 등 약 백여 명이 탑승했고 척박한 기후와 풍토병 등 정착하기 어려웠던 버지니아의 상황을 알고도 미국으로 떠났다.

 

메이플라워호 청교도 지도자 에드워드 윈슬로


1620년 9월 영국의 플리머스 항에서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에서 청교도만의 지상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약 100여 명을 태운 메이플라워는 북아메리카를 향한 66일의 여정을 시작한다. 

메이플라워 서약 
그러나 항해가 쉽지 않았다. 많이 이들이 되돌아 갈 것을 요청하기도 하고 갈등을 겪게 된다. 그래서 도착 이후에 생길 문제점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배 안에서 메이플라워 서약을 만든다.

 

Mayflower Compact

메이플라워 서약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라는 가치의 등장이다. 서약서에 언급된 것이 평등한 법률을 만든다는 문구 때문에 이것이 미국의 기본 가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것으로 메이플라워 서약은 미국의 최초의 자치 헌법으로 평가 받고 있다.

메이플라워 서약 내용


우여곡절 끝에 단 53명만 신대륙에 도착했고 엑 처음 도착한 곳은 프로빈스 타운 이후 메사추세츠의 플리머스 항에 도착한다.

 

메이플라워호 항로

 

 

미국의 추수감사절 유래 

식민지의 현실은 희망과는 달리 너무도 참담했다. 당시 매사추세츠 지역에는 유럽의 정착민이 없었기 때문에 집짓고, 먹을 것을 얻는것 모두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고 혹독한 북아메리카의 환경과 날씨때문에 건장한 남성들조차 질병으로 죽게되었다. 이런 위기에 빠진 청교도 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이 바로 그곳의 원주민 왐파노아그족(매사추세츠 남동부에 거주하는 인디언 부족)이었다. 

 


원주민들은 이들에게 사슴고기 칠면조 등 식량을 나눠주기도 하고 집짓는 법, 낚시 등 생존에 필요한 노하우를 알려주며 청교도들과 우정을 쌓아갔다. 그리고 풍토에 맞지 않는 유럽 작물의 종자 대신 옥수수 씨앗을 주고 청교도인들에게 재배법을 가르쳐 준다.

 


이에 청교도들은 가을에 수확한 농산물과 여러가지 작물을 인디언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게 된 것이 미국의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의 유래이다. 1년 동안 추수한 것에 대한 감사제를 하나님께 올린다는 개신교의 기념일로 미국에서는 1년 중 최대 명절로 꼽힌다. 400년전에 청교도와 인디언의 파티가 추수감사절의 유래인 것은 청교도들의 정착이 미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를 알수 있다. 

 

 

 

하버드, 예일대의 시작

초기 청교도인들이 성공적으로 미국에 정착하게 되자 163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많은 영국 청교도들이 매사추세츠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교회 다음으로 만든것이 학교였다. 미국의 명문대 하버드 대학교가 1636년 청교도에 의해 설립된 학교이다. 청교도 목사였던 존 하버드라는 사람이 소장한 책과 재산을 기부해서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 존 하버드 사후 추모하는 의미로 하버드 대학교 명명했다. 

 


청교도들은 교회뿐만 아니라 교육 기관을 통해 일반 신도들이 청교도의 이상을 배우길 바랐던 것이고 그것을 위해 하버드 대학을 지었고 1636년 설립 당시 하버드 대학교의 신조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였다.

 



또한 예일 대학교 역시 1701년 종교적인 이유로 10명의 청교도 목사들이 설립한 학교이다. 이렇게 청교도인들은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면서 점차 땅을 개척하고 확대해간다.

 

 

매사추세츠에서 시작된 정착은 현재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까지 영국의 정착민들이 늘어갔고 메릴랜드 지역엔 가톨릭 교도들이 정착했고 버지니아 지역에는 성공회교도들이 정착한다. 

 

 

청교도인의 인디언 배척
그러나 정착민들이 늘고 땅이 확장되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다. 원주민인 인디언들과 다툼이 생긴 것이다. 청교도들이 동맹을 맺은 인디언을 배척하게 된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가 있었다. 인디언들을 개종 시키려했으나 자신들의 전통, 언어, 문화를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개종을 거부했고 결국 청교도들을 배척하기 시작한다.

 

인디언을 배척한 또 다른 이유는 땅 때문이었다. 청교도인들은 땅을 소유의 개념으로 생각했고 인디언들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고 필요한 만큼 자연에서 빌려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땅에 대한 개념의 차이로 결국 피의 살육전이 벌어지게 된다. 

 

 



1636년 청교도 VS 인디언 피쿼트 전쟁
당시 청교도인들은 매사추세츠-로드 아일랜드-코네티컷으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코네티컷에 살고 있던 피쿼트 부족과 마찰이 발생한다. 결국 피쿼트 부족은 영국 정착민 13명을 살해한다. 

이에 분노한 청교도와 영국 정착민들은 약 90명 규모의 군대를 조직해 보복에 들어갔다. 1637년 5월 26일 새벽에 피의 대학살이 벌어진다. 피쿼드 부족의 마을을 급습한 군대는 무려 약 500명의 인디언을 살해한다. 그 중의 절반은 불에 타 죽고 이런 끔찍한 살육전은 2년 동안 계속되었고 피쿼트 부족은 거의 전멸하게 되고 청교도들은 이런 전쟁을 통해 땅을 넓혀 나가기 시작한다. 

 

초기 13개의 식민지 완성
수많은 인디언들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낸 청교도들은 안정적으로 땅을 넓혀가게 되고 매사추세츠를 중심으로 미국 동부로 몰려오기 시작한 수많은 영국 이주민들은 이때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13개 완성형 식민지이다. 
 

초기에 북아메리카로 이주했던 청교도 중심의 뉴잉글랜드(빨간색) , 퀘이커교, 루터교, 가톨릭 등 다양한 교파의 이주민이 거주하던 중부 식민지(파란색), 버지니아를 중심으로 영국의 국교 성공회 교도들이 많은 남부 식민지로 종교적 특징에 따라 크게 3구역으로 구분이 가능한 초기 13개 식민지


이렇게 13개의 식민지를 영국은 어떻게 관리를 했을까? 뜻밖에도 영국은 그냥 내버려뒀다. 각각의 식민지에 영국 왕이 총독을 임명하지만 대부분의 관리들은 식민지인들의 투표로 선출되고 이러한 식민지 직선 의회(북아메리카 초기 13개 식민지 정착민들로 구성된 의회)는 미국 독립운동의 씨앗이 된다.  


뉴욕, 펜실베니아의 탄생 (뉴욕, 인디언에게 얼마에 샀을까?)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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