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
나치 전범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한 명인 탁상 위에 학살자로 불리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유대인 말살 계획 최종 해결 당시 아이히만은 가능한 한 빠른 시간에 유대인들의 강제 추방을 효율적으로 했던 인물로 유대인 수백 명을 절멸수용소로 이송시켰던 인물이다.
전쟁 후 아이히만은 미국 포로가 되어 친위대원 포로수용소에 수감되고 뉘른베르크 군사재판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불안한 마음에 탈출을 감행했다. 북독일로 탈출해 농사일을 하며 4년간 있다가 결국은 이탈리아로 이동 후 다시 1950년 가톨릭 사제의 도움으로 아르헨티나로 이동한다. 이후 아르헨티나에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이름의 새 신분증을 발급받아 평범한 삶을 이어간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추적으로 체포된다. 그리고 1961년 4월 11일 이스라엘 재판정에 서게 된 아이히만은 전 세계게 중계된다. 아이히만의 죄목은 이러하다.
그러나 그는 이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상관의 지시를 따랐을 뿐 자신은 학살이 이루어지는 모르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본인의 주장과 다르게 폴란드 학살 현장 조사를 나갔던 적이 있었고 현장조사에서 벌거벗은 유대인들이 트럭에 태워지고 잠시 후 시신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이다. 즉 이동형 가스차량으로 유대인들이 학살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유대인을 죽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이히만은 이렇게 말한다. 상관이 시키는 대로 단순한 행정 업무만을 했다고 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끝까지 반성의 기미가 없었던 아이히만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by 한나 아렌트
진술하는 아이히만을 지켜보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있었는데 그녀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 사상가로 아이히만의 재판을보고 쓴 책이 큰 주목을 받았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그녀의 책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한나 아렌트의 명저로 이 책의 부제 악의 평범성은 우리가 상상할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악마의 탈을 쓴 사람일 것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 이웃같은 사람이 악마같은 일을 저지를수 있다는 것이다.
악의 평범함 by 아렌트
아렌트는 책을 통해 부도덕한 명령에 저항하지 않은 아이히만이 유죄라면 우리처럼 평범한 인간들은 모두 유죄인가? 악행을 방조한 모든 독일인들 또한 죄인인가 ? 그렇지는 않다. 평범한 독일인 모두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순 없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은 영어로 Banality of Evil 인데 Banality의 뜻은 평범함, 진부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또다른 의미의 천박함, 저속함, 속물적인 것의 뜻이 있다. 평범함으로 해석을 한다면 세상의 모든 악행에 무관심한 모두가 공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분석한 이들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출세 지향적 사람으로 업무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안해도 되는 짓까지 한 사람이었다. 또한 나치 친위대로서의 정체성또한 강한 인물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 학살을 계획하고 실행했다고 볼수 있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그릇된 나쁜 신념을 가지고 나쁜 일, 범죄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유죄인 것이다. 또한 법정에서도 반성의 기미없이 자신의 맹목적인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라 광대다"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Banality of Evil을 악의 천박함 , 악의 저속함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계적 맹목적으로 행하는 일에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은 것이 바로 악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각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죄와 책임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평범한 독일인들 모두가 죄인은 아니지만 그들도 책임은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악행을 방조한 독일인들의 정치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안톤 슈미트
독일인들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오스트리아 출신의 안톤 슈미트 군인이 있었는데 죄 없이 학살되는 유대인을 슈미트는 돕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게토에서 굶주리던 유대인을 위해 식량을 주기도 하고 유대인들에게 위조 신분증을 발급해 탈출을 돕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행동이 발각되면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을 당했던 인물이다.
형장에 가기전 안톤 슈미트가 남긴 유언이다.
안톤 슈미트의 사례를 보면 아이히만이 변명했던 자신은 시키는 데로만 했다는 말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말인지 알수 있다. 안톤 슈미트는 아이히만보다 계급도 낮고 운신의 폭이 좁았던 인물이지만 맹목적인 애국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길을 선택한 슈미트였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도덕적 결단을 할 자유가 있다. 그래서 이런 책임의 논리가 독일인들에게 엄청난 각성을 일으킨 것이다.
독일의 과거 청산 시작점
독일이 본격적인 과거청산을 시작한 건 1960년대 이후였다. 서독은 1960년대 초까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서독은 경제성장에 급급한 나머지 과거 청산 문제에는 관심이 크게 없었다. 동독의 입장은 나치는 자본주의가 낳은 산물이다. 히틀러는 서독인이었다. 는 입장이었고 자신들은 나치와 싸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그 계기는 세대교체였다. 이들을 68세대라고 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68운동이 일어난다. 1968년 프랑스 파리에서 정부 교육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시작한 운동이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퍼져나간 반체제, 반문화 운동으로 이에 영향을 받은 독일의 젊은이들 또한 권위주의 타파와 나치 청산을 위한 투쟁을 전개한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를 부도덕하다고 본 것이다. 이들을 통해 독일인으로써 책임을 통감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갔다. 그런 독일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 발생한다. 1970년 12월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다. 폴란드와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독일 정상으로써는 전쟁 후 처음으로 방문한 독일 총리였다.
그는 바르샤바 희생자를 추모하는 게토 추모비 앞에서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다. 그는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이런 그의 행동은 나치가 벌였던 과거의 악행에 대한 독일인들의 진정성을 보여준 반성과 사과로 받아들여졌다.
나치 전범 기업들
또한 나치 정권의 악행을 도왔던 전범 기업들에 대한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다. 벤츠, BMW, 폭스바겐 등등은 강제 노역을 통해 엄청나게 성장했던 기업들이다.
1990년대 말 강제노역에 착취당했던 사람들이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고 미국을 중심으로 독일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결국 2000년 8월 정부와 함께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보상을 시작했다.
홀로코스트 전범 공소시효
또한 문제는 홀로코스트 공소시효 문제였다. 독일의 과거 청산에대한 전범의 공소 시효는 당시 독일 현행법상 20년이었다. 그러나 1979년 홀로코스트 전범들에 대한 공소시효를 말소시키면서 홀로코스트에대한 공소시효는 없이 죽을때 까지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 예로 2021년 10월 브란데부르크 노이루핀시 주법원에서 재판이 열린다.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3518명의 살인을 도운 혐의로 기소된 법정에 선 피고인의 나이는 100세였다.
독일 과거 청산의 문제점
과거의 불의를 망각하고 반성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수 없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말고도 독일 제국 시절 나치 시절 이전에 자행되었던 서아프리카 원주민을 독일군이 종족이 없어질 정도로 대학살을 했던 일이 있다.
독일 정부는 사건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미비아에 대한 지원을 결정했으나 학살에 대한 배상금이 아닌 단순 원조의 개념의 국가에 배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슷한 경우였다.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사과와 배상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될 문제이다.
독일의 과거 청산 노력들
그럼에도 독일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 뿐만아니라 집시, 장애인 등 당시 나치에 의해 희생당했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기념비를 세워 독일의 과거 청산을 위해 노력 중이다.
무엇보다 과거 극복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다. 반 민주적 체제에서는 과거 극복은 없다. 과거를 청산하려면 스스로를 가해자로 인정해야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과거를 해방해야 미래도 해방될 수 있다.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전진성 역사학 박사 강의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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