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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화 원정대 콜럼버스보다 80년 앞서 바다를 정복...173-1
대운하 건설 이후 영락제는 내륙에 집중하게 된다. 명나라에서 바다보다 내륙의 중요성을 확고해진 계기는 당시 명나라의 고질적인 위험 요소였던 오이라트라고 불리는 오랑캐 세력이었다. 오이라트는 몽골 서부에 있던 몽골계 부족 , 북로라고 칭한다.
토목보의 변
수도 북경은 경계선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내려오면 수도인 북경이 즉각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이때 1449년에 토목보의 변이 발생한다. 당시 명나라는 국경과 매우 가까운 토목보라는 성에서 오이라트와 싸우고 있었는데 이 성은 협소하고 양식이 많지 않아 명나라군이 오이라트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런에 이때 명나라 6대 황제 정통제가 오리라트 군에게 산채로 잡히게 된다.
이에 명나라 조정은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정통제 동생을 황위에 올리고 새 황제 즉위로 정통제가 인질로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오이라트는 정통제를 명나라로 돌려보냈다. 이에 명나라는 정치적 혼란이 발생한다. 돌아온 황제는 가택연금되고 경태제는 시름시름 앓다가 7년만에 사망한다. 그래서 다시한번 정통제가 황제가 된다.
만리장성 건설
이후 명나라 정통제는 북로를 막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래서 북쪽에다가 커다란 성벽을 쌓게 되는데 이것이 만리장성이다. 북방민족을 막기위해 성벽이 처음 건설된 것은 진나라 진시황제때인데 그때는 짧은 성벽과 토성에 불과했다. 명나라때 북로세력을 막기 위해 15세기 후부터 17세기 초까지 약 150여 년에 걸쳐 새로운 성벽을 벽돌로 세웠고 증축된 성벽은 서쪽 가욕관에서부터 동쪽 산해관으로 이어졌고 길이가 약 6,260km에 달한다.
왜구의 침략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6350km이니 지금의 만리장성 대부분이 명나라 때 건설된 것이다. 대규모 장성을 만드는데 엄청난 인력과 막대한 금액이 동원되니 북쪽의 북로를 막는데에만 집중했는데 남쪽에서도 명나라를 위협하는 또 다른 세력 왜구가 등장한다.
임진왜란 발발 배경
명나라 11대 황제 가정제 시기에 왜구의 침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들은 한반도, 중국, 동남아시아 등 선박이나 해안에 살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약탈을 일삼았고 이에 가정제는 바다를 완전히 봉쇄해 버리고 일본과의 조공 무역을 금하는 해금령을 실시한다. 명나라와 무역이 단절되자 생계 수단이 사라지게 된 일본 사람들은 불만이 폭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왜구의 침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이다.
가정제가 황제로 있던 40년 동안 왜구의 침략 횟수는 약 600회에 달한다. 명나라와 교역이 끊어진 일본은 바닷길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명나라를 갈 방법을 모색한다. 바로 조선을 통해서였다. 일본은 명나라로 갈길을 비켜달라는 핑계로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도 조선에 원군을 파견했고 이때 명나라는 자신의 나라를 위협하는 적국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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