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정 등장
로마 공화정 시대는 기원전 6세기 말 귀족들이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한다. 공화정 초기 귀족들은 집정관과 원로원을 독점했으나 로마의 상공업이 발달하며 부유해진 평민들이 로마군의 주력이 되며 참정권을 요구했다. 이렇게 평민들도 로마 공화정에 참여하게 된다.
자마 전쟁 , 포에니 전쟁
마케도니아 그리스 페르세우스 왕과 로마의 장군 파울루스 장군이 전쟁을 하게 된다.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패한 마케도니아는 이후 천여 명의 그리스 귀족 청년들이 포로로 끌려 가게 되고 이들은 로마시민이 되어 로마역사에 많은 기여를 했다. 기원전 202년 자마전투는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으로 이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지중해의 주인이 된다. 이후 로마는 카르타고 정복을 감행하게 되고 로마군은 카르타고를 초토화 시킨다.
공화정 말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공화정을 흔든 문제적 정치인이었는데 카이사르의 연인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 아들 카이사리온을 낳는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고 로마로 와서 권력을 잡으려 했으나 BC44년 로마 공화주의자 브루투스에 의해 암살당한다.
클레오파트라 이집트의 마지막 왕의 악티움 해전 원인 및 결과
이때 카이사르 누나의 외손자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는 당시 19세로 어린 나이에 후견인 카이사라의 죽음을 목격하고 큰 뜻을 세운다. 공화정 말기의 혼란을 잠재우리라 생각한다. 옥타비아누스에게는 카이사르의 부관이었던 안토니우스라는 정적이 있었고 카이사르 죽음 이후 그의 재산과 세력을 차지하려했다. 이들이 싸운 해전이 악티움 해전이다. 이 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를 거두며 로마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전쟁 패배 후 안토니우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제정 시대) 로마 제국의 시작 , 로마 1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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