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753 로마 왕정
BC 509 로마 공화정
BC 27 로마 제정
AD 476 제국의 붕괴
로마의 탄생
로마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로마를 창건했다고 설이 있다. 늑대에 숨겨진 뜻은 매춘부를 암늑대로 표현한 것이다. 늑대가 키우던 쌍둥이 형제를 발견한 목동은 자신의 아내인 매춘부 라렌티아에게 키우게 한 것이다. 이는 로마 창건자=매춘부의 아들이 의미하는 것은 로마는 비천한 출신이 만든 나라라는 것을 스스로 밝힌 것으로 특정,특별한 집단이 아닌 무지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든 나라였다는 것이다. 로마의 시작을 가능케 한 힘은 다양성이라는 것이다.
로마 창건 후 이방인들이 로마로 대거 이주해왔는데 남자가 너무 많아 인근 마을에서 여자를 납치해와서 결혼을 했다. 극단적 통혼 정책을 펼친 결과로 제 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는 로마에 통합된 사비니 출신의 왕이었다. 그는 대제사장, 베스타 여사제 제도를 도입한 로마의 입법자였다. 이방인에게 왕이 나온 것은 그만큼 개방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 5대 왕 또한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도 그리스 이주민 출신 왕이였다. 그는 농업 중심 로마를 상업, 건축 도시로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후 6대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처음으로 왕국에 성벽을 쌓는다. 명분은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이전까지는 통혼, 이민족을 받아들이며 사회를 이끌었는데 성벽을 쌓으면서 이런 외부와의 개방성을 차단한 것이다.
중국의 만리장성과 유사하게 로마 왕정은 내부의 문제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로마 7대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폭정을 일삼다 왕정 붕괴를 촉발시켰고 그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가 아버지의 오만한 성격을 물려받아 급기야 사촌의 아내를 겁탈하면서 피해당한 여성의 친족들과 공화주의자들이 반락의 시작 결국 509년에 7명의 왕이 통치한 로마 왕정 시대는 역사의 뒤로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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