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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독도는 우리땅 역사 in 독도/스캐핀문서 677호/독도 삽살개

by 365 ^^ 2020. 9. 13.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47회]


오늘의 탐사지: 독도

주제: 독도는 우리 땅/독도 역사




독도


섬 자체가 1982년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되어 있고 89개의 크고 작은 바위 섬으로 이루어진 독도 


독도 가는 법

독도행 여객선은 울릉도 모든항(저동항 도동항 사동항)에서 출발한다. 


배가 날씨나 파도 높이 등에 따라 접안이 안되면 독도를 가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접안 시설
1996년 일본이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독도 등을 제외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일본이 경제 수역에 독도를 포함한다. 
이에 해운항 만청은 177억 원을 들여 접안 시설 건설에 착수했다. 이에 일본은 김태지 주일 대사를 불러 항의했으나 김태지 대사는 독도는 한국 영토이므로 접안 시설 건설은 당연한 주권 행사로 일본 측의 항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마스코트 독도 삽살개


23년 간 2년 주기로 7대 째 독도 마스코트로 활약한 삽살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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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조난어민 위령비 



주일 미군 독도 폭격 사건


1948년 6월 8일 대한민국 정부 출범 2달 전 일본 오키나와에 주일 미군이 독도를 폭격 훈련장으로 사용하다가 



독도에서 어로 활동하던 어민들이 폭격에 맞고 결국 사망자까지 발생하며 주일 미군의 1차 독도 폭격 사건 이다.



그때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위해 위령비를 세웠다. 


당시의 위령비는 1959년 태풍 사라에 의해 유실되고 지금의 위령비는 2005년에 재건 되었다. 

2달이 지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이 되고 1952년 6.25 전쟁 도중 재발한 주일 미군의 2차 독도 폭격 사건 때는 다행히 사망자가 없었고 그때 대한민국 정부는 당시 정부는 부산에 있었지만 미국에 강력히 항의하며 여기 독도 인근 해는 우리 수역 임을 알렸다. 폭격 훈련에 대한 부당함을 토로 후 재발 방지를 요청하는 사건에 대해 말을 아끼던 미국은 결국 독도를 폭격 훈련지에서 제외 시킨다. 






일본 주장 당시 주일 미군은 독도를 폭격 훈련장으로 인정했다. 그러므로 독도는 미군이 인정한 일본 영토다. 

우리 측은 미국이 한국의 요청을 수락했으니 미국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한 것이고 독도가 일본 영토였다면 독도 어민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나섰을 것이다.  

일본 주장 
또 다른 일본의 주장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독도가 빠진 점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1951년 9월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란? 


연합국과 일본이 맺은 전후 처리를 위한 평화조약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은 

제주도,거문도, 울릉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독도가 빠져있다고 독도영유권을 차지하기 위한 자의적 해석을 한 것이다. 




우리 입장


울릉도 부속 섬이 44개 독도 부속 섬이 89개 인데 일일이 부속 섬들의 이름을 모두 쓸 수는 없는 거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는 대표적인 섬들만 명시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독도가 고의적으로 빠지게 된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되었다. 1951년 6.25전쟁으로 국내 정세가 혼란스러운 틈에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려는 음모가 있었다고 본다. 






일본과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기 전에 우리나라는 당시 주미 한국대사가 미 국무성에 평화조약 안에 독도가 빠진 것을 미리 인지하고 추후에 발생할 문제를 막기 위한 조치로 일본에 포기해야 할 영토에 "독도를 포함 시켜 주십시오" 요구한다. 


우리정부가 보낸 서신내용



러스크 서한 내용


그러나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보 러스크의 반응은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끝까지 독도가 명시되지 않았다. 





 스캐핀 문서 677호

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 Instricion’ 약칭은 스캐핀(SCAPIN)



그러나 광복 이후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인 스캐핀 문서 677호에 일본 영토로부터 제외되는 지역이 확실히 명시 되어 있다. 



이 문서에는 울릉도 독도 제주도가 일본영토가 아님을 꼭 집어서 명시하고 있다. 


지도로도 명시


뿐만 아니라 활자로도 명시되어 있다. 





독도 인근 수역 변화


독도 관련 문제의 원인 중 하나인 독도 인근 수역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의 수역을 명백히 그어 우리나라 어업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인 평화선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맺는 과정 중 1차 한일 어업협정도 맺어지는데 그때 대한민국 전관 수역(어업 및 자원 등 발굴 가능) 밖으로 밀려난 독도

각국 연안 12해리 까지 전관수역을 새로 설정했다. 


세월이 지나고 1998년 IMF 사태 발생 후 다음 해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는데 기존에는 영해가 본토에서 12 해리였으나 협정 이후 배타적 경제수역 200해리로 확장되어 독도를 다시 우리 수역에 포함 시킬 기회가 되었다. 


독도 주변으로 12해리는 우리 영해로 이승만 대통령 때는 나름대로 수역을 그릴 수 있던 분위기였으나 1965년 주변국에 돈을 빌려야 할 만큼 힘들었던 시국이고 1998년 IMF 사태로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독도는 수난을 겪는다. 


2016년 이후로 불리한 협상을 하지 않고 잠시 중단된 상태여서 냉전 중인 한일관계로 한일어업협상의 결렬이 장기화로 2020년 5월 기준 한일어업협상 표류 47개월째로  현재는 국내와 중간 수역에서 어업 중이다. 


일본의 독도는 일본땅 운동들
내년 2021년 일본 교과서에 "단 한번도 독도가 한국의 땅이었던 적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17종 사회과 교과서 중 14종의 교과서에 82%의 교과서에 검증되지 않은 역사 사실을 기재한다. 



개정된 교과서로 일본 학생들이 역사를 배울 예정이다.  






2020년 1월에는 독도를 일본 영토라 주장하는 영토,주권 전시관을 7배 정도 확장 개관을 했다. 평일만 오픈이던것을 주말에도 오픈을 하고 독도는 일본 땅 이라며 일방적 주장 전시하고


또 다른 일본의 움직임 중 하나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 


일본의 의도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전 국민이 독도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역사적 지식과 의식을 가슴에 담은 것이 독도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인지하기 위한 배움 여행이다. 






4부 끝 


독도는 우리땅 관련 내용 ▼


수많은 사료들이 증명하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증거들 (1부)


 안용복과 울릉도 쟁계 in 안용복 기념관/대마도는 조선땅! (2부)


(독도 박물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증거들과 일본 독도 편입과정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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