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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ical spot signs

남원 피바위의 진실과 황산대첩지비

by 365 ^^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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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왜구는 고려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약 169년 동안 왜구의 침략 횟수는 520회 이상으로 1380년 500척의 배로 고려를 침략한다.  당시 침략한 왜구의 수는 약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왜구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들쑤시면서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그 과정에서 포로로 잡은 아이들을 죽였으며 시체가 산을 이뤘을 정도로 처참했다.

 

왜구를 피해 물속에 뛰어든 여인 세명이 보인다.
고려말 왜구가 침입한 지역(빨간점)
어린아이를 제사 제물로 삼은 왜구의 끔찍한 만행



황산전투


이런 왜구를 막기 위해 당시 동북면을 방어하고 있던 이성계를 부른다. 그리고 이성계는 황산에서 왜구와 맞붙게 되는데 이것은 고려 역사상 왜구와 벌인 최대규모의 전투였다. 신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이성계가 이때 50여개의 화살을 적에게 명중시킨다.  이성계의 활약으로 고려군의 기세가 살아나게 되고 이성계가 왜구의 대장을 사살하면서 왜구의 기세는 꺽이게 된다 . 고려군의 10배였던 왜구였으나 70여 명만 생존하게 된다. 

 

 

죽임을 당하는 왜구의 곡성이 만 마리 소의 울음소리와 같았고 냇물이 모두 그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사실 이 피바위는 일반 바위보다 철분이 9% 가량 많은 바위로 철분이 물에 산화되어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다. 그러나 이곳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해서 여전히 이곳은 이야기가 전설로 남아있다. 그만큼 황산전투가 치열했다고 볼수 있다. 

 


황산대첩비지 

 

피바위 근처에 황산대첩비지가 위치한다. 이성계의 황산전투 승리를 기념하여 선조 1577년에 건립된 황산대첩비지만 이후 일제강점기때 일제에 의해 파괴되어 지금은 새로 복원된 것과 파비각이 함께 있다. 

 
아군보다 열배가 넘는 왜적을 대파함으로써 만세에 평안함을 이루었으니 이 업적을 기려 비석을 세운다 -황산대첩비문 중

 

파비각 

일제강점기때 파괴된 비문은 따로 파비각을 만들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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