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미국은 예일 대학교에 보관 중인 페루의 잉카문명 유물 4만 6000여 점을 반환하기로 결정한다. 연구를 이유로 대여해갔던 문화재가 100년 만에 되돌아간 것이다. 우리의 외규장각 의궤도 2011년 프랑스에서 대여 형식으로 반환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출된 문화재들 어떻게 된 것일까? 약탈당한 300권의 의궤 중 한 권('기사진표리 진찬 의궤')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있다.
영국
외규장각 목록 책인 외규장각형지안에 보면 '기사진표리 진찬 의궤'가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기록이 있다.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한 이 의궤가 어떻게 영국에 있나?
1894년 10월 24일 파리의 한 치즈 상회로부터 10파운드에 구입했다고 적혀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프랑스로 약탈된 의궤 중 하나를 누군가가 빼내서 팔아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사진표리 진찬 의궤
19세기 아시아 서적 중 최고로 꼽히고 있는 한 권의 책으로 조선왕실의 연회를 기록한 것으로 1809년 순조가 대왕대비이자 자신의 생모인 혜경궁 홍 씨의 회갑을 맞아 베풀었던 대규모 잔치를 기록한 의궤이다.
이 의궤는 1992년 이태진 교수(서울대 국사학과)에 의해 처음으로 행방이 확인되었다. 그림이 자세하고 정교하며 아름답다.
프랑스
파리의 앵발리드 군사박물관 안에 있는 쌩루이드 교회는 나폴레옹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쌩루이 교회 양쪽 벽면에는 깃발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식민지 시절 프랑스군이 세계 각국에서 노획한 60여 개의 외국 군기들이다. 그중에 '친병제오대우영' 이라고 한자로 쓰인 깃발은 조선의 군기로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강화도에서 말단 부대의 깃발을 노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깃발이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대가 얼마 큼의 문화재를 약탈해갔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 국립박물관에는 의궤 외에도 동아시아 지도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 지도 도면부에 소장하고 있는 지도는 실물은 공개가 안되고 있고 열람을 요청하면 파일로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외규장각에서 가져온 조선본 동아시아 지도이다.
천하여지도
실무 크기의 지도 가로 세로의 크기가 2m에 달하는 초대형 정밀지도로 비단에 그려졌고 한반도는 5가지 색으로 그려져 있어 예술적 가치도 뛰어나다. 그러나 이 천하여지도가 중국 고대 지도책에 실려 중국 지도로 소개되고 있다.
그 이유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어떤 사서가 이 지도를 창고에서 발견해서 학회에서 여러 번 발표를 했는데 발표할 때 중국 지도라는 이름으로 발표를 한 것이다. 조선왕조에서 그린 국보급 지도가 중국 지도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2004년 로즈 제독의 후손에게서 입수한 한 권의 코리아 컬렉션이라는 이름의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병인양요 때 로즈제독이 강화도에서 입수한 약탈 유물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기증하면서 받은 확인증에 목록이 확인되었다.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360여 점의 약탈 유물들 중에 의궤 이외에는 행방 조차 알 수가 없다.
일본
2010년 일본은 한국의 도서 문화재 1205 책을 반환하기로 했지만 42% 달하는 7만 6천여 점이 약탈된 문화재가 일본에 있다.
민간차원의 반환 노력은 계속되고 있어 추사 김정희' 세한도'는 1944년 서예가 손재영이 도쿄의 일본 소장가를 찾아가 되사왔다.
북관대첩비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승리를 기록한 '북관대첩비'를 러일 전쟁 때 일본군이 약탈해가서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05년도에 돌려받아 현재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현재 국립 박물관에 있는 경천사 10층 석탑은 일제강점기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 국내 대신 다나까 궁내상이 이 탑을 해체해 빼돌렸던 것이다. 이후에 국내외의 비난 여론이 계속되자 일본은 결국 탑을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10년 만에 돌아온 탑은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고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좌)<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중 발인반차도 > (우) <조선왕실 의궤>
오쿠라 박물관은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우리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다. 이곳 정원에는 고려시대 석조 미술을 대표하는 평양 율리 사지 팔각 오층 석탑이 일본 정원의 장식품으로 전시되어 있다.
일본 국립박물관에는 오구라가 기증한 조선시대 고종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갑옷과 투구 등 왕실 유품이 다수있다.
오사카의 동양 도자 박물관은 조선에서 수집한 도자기들을 전시하게 지은 도자 전문 박물관이다. 이곳에 전시된 고려청자는 하나하나 모두 진귀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의 고려청자는 조선의 무덤에서 출토된 자기를 일본인들이 경매에 붙여 자신의 나라로 빼돌린 것이다.
조선 백자가 있던 시절에 고려청자는 오직 무덤에서만 발견된 것으로 일본인들이 도굴을 하기 전까지 조선인들에게도 낯선 물건이었다. 일화로 이왕가 박물관에서 고려청자를 본 고종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이 물건을 어디서 났는지 물었더니 일본에는 없는 물건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당시 고려청자에 매료되어 도굴품으로 나온 고려청자를 대량으로 사들여 자신의 지인들에게 수십 점씩 선물했다고 한다. 이 덕분에 고려청자의 인기가 더 높아졌고 일본 도굴 군들은 닥치는 대로 고분을 파헤져 고려청자를 도굴해 갔다. 개성과 강화, 평양, 부여 등 무덤들이 마구 파헤쳐졌다.
일제 강점기 또 하나의 우리 유물의 참상을 보여주는 순화4년명 청자항아리 (보물 237호)는 고려 태조의 사당의 제기로 용도와 제작연도 제작자명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는 사료가치가 큰 도자기인데 이것이 경성 미술 구락부 경매 도록에 실려있었고 고려왕실의 제기를 꽃병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미국의 한 박물관에 40년간 방치되어 있던 불화 2013년 되돌아왔다. 한 기업체가 박물관에 발전지원금을 기부하고 되찾아 온 것이다. 환수한 기업은 외국계 게임회사였던 것이 화제가 되었다.
또한 영국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에 있는 아시아관, 이집트관, 그리스관 등의 전시물품은 모두 약탈로 채워진 것이다. (알쓸신잡 유시민 왈) 이것은 일종의 '문화재 포로수용소'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는 약탈한 문화재 반환을 끊임없이 거절하고 있으면서도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약탈해간 프랑스 문화재는 100% 환수받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는 나라이다.
이집트는 문화재 반환운동의 개척자이다. 2010년 영국 런던대학교는 20만 년 전의 페루 구석기 유물을 되돌려줬고 프랑스는 이집트 왕들의 계곡 근처에서 출토된 벽화 구조를 반환해야 했다. 최근 8년간 이집트가 반화받은 이집트 문화재는 3만 1000여 점에 이른다.
중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가 약탈해간 문화재 반환 실태 파악을 위해 문화재 전담팀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중국 국가 문물국' 이 실태파악을 바탕으로 해당 국가들에게 공식적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약탈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이 지난 60년간 회수한 약탈 문화재는 5000여 점으로 페루 4만 6000여 점. 이집트 3만 1000여 점을 반환받은 것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 숫자이다. 공식 확인된 한국의 해외 유출 문화재는 20만여 점이 이르고 이 숫자는 박물관과 전시관에서만 소장하고 있는 약탈품이고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개인 소장용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엄청날 것으로 파악된다.
[출처 역사스페셜 61회, KBS 한국 사전, 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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