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치킨 전문점은 36000여개 이상이라고 한다. 또한 한국인이 하루에 먹는 닭의 수는 52만 마리로 축구장 9개에 해당한다. 인당 20마리 이상의 닭을 한해에 소비한다. 프랜차이즈 프라이드 치킨의 원조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프랜차이즈 기업 KFC의 켄터키 프라이드 할아버지(커넬 할랜드 샌더슨)로 미국의 켄터키 주에 시작된 프랜차이즈 프라이드 치킨이 원조이다.
사실 이전부터 닭을 튀겨 먹는 것은 있었으나 닭에 독특한 레시피를 입혀 밀가루를 묻혀 프랜차이즈화해서 팔기 시작한 것은 커넬 할아버지가 시초이다.
한국 치킨 역사
한국전쟁 전.후
치킨이 들어온 계기는 한국전쟁이 전에는 양반들이 백숙을 먹었으나 전쟁 후 미국 참전과 동시에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이 소개되었다.
1960년대
1960년대 한창 일하던 영양분이 필요했던 가난한 시절 전기구이 통닭이 혁명을 일으켰다.
1962년 사료공장이 가동되고 양계산업이 활황을 띄면서 계란과 닭고기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1970년대
1970년대 식용유 출시로 프라이드 치킨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치킨은 서민의 먹거리로 자리잡으면 값싸게 먹기 쉬운 치킨이 되었다.
그런데 대구에 유난히 많은 치킨집이 있고 대구 달서구에는 치킨집이 432개가 있을 정도로 치킨의 고장이 대구이다.
대구가 치킨의 고장이 된 이유
내륙도시인 대구는 특별한 먹거리가 없었고 1970년대 국내 대형 양계장의 80%가 대구. 경북지역에 밀집하면서 양계산업이 발달하게 된다. 전체 치킨 브랜드의 반정도는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양념치킨 창시자, 원조
1980년대
1980년대에 양념치킨 최초 개발자 윤종계씨는 손님들이 후라이드 치킨을 남겨놓은 것을 보고 뻣뻣하고 입천장이 자꾸 벗겨지고, 식으면 닭 냄새가 나는 것을 없애기 위해 우리나라 고유의 양념 소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양념바른 치킨은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양념소스 비법을 배워갔고 대구를 본점으로 치킨집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시작되었다.
1997년 IMF 이후
IMF 시절 조기퇴직했던 많은 서민들이 선택한 창업 아이템은 치킨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고 좋아하는 간식이 대박이 나게 된다. 이 시기에 두마리 치킨, 반반메뉴등 많은 종류의 치킨 양념이 개발되었다. 또한 2002년 월드컵 특수로 치맥이 엄청나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10년 이후
그러나 치킨집 포화상태가 되면서 무한경쟁으로 들어가게 되고 많은 치킨집이 폐업을 하게 되었다. 이후에 한류가 붐을 이루며 드라마 ' 별에서 온 그대' 를 통해 치맥이 한류를 타고 전세계로 퍼지게 되면서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 치맥이 되었다.
2013년 부터는 드라마 치맥 인기로 인해 대구에서 치킨집 업체들이 모여 대구 치맥 페스티발을 개최하던 것을 시작으로 치맥 페스티벌이 활성화되었다.
[출처 ktv 치킨에 빠진 대한민국편, 유키즈 69회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