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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

스탈린그라드 전투 (천왕성 작전 )

by 365 ^^ 2022. 1. 28.

[325회]

1942년 8월 600여대의 폭격기가 수천 톤의 폭탄을 투하하며 시작된 독일군의 대공습으로 4만여명의 희생자가 나고 도시는 잿더미가 되었다. 6개월 기간동안 총 2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역사상 가장 참혹한 스탈린그라드 전투이다. 

 

 

 

스탈린그라드 도시

 

스탈린그라드 도시는 영화<Enemy at the Gates>의 배경이기도 한 도시이다. 스탈그라드는 러시아 내전 때 스탈린이 반 혁명군에게 이 도시를 방어한다.  그래서 1925년 스탈린이 자신의 이름을 단 스탈린그라드 라고 도시의 이름을 붙였다. 1941년 겨울 독일 군은 모스크바 진격을 중단하고 전쟁은 단기전에서 장기전으로 바뀌게 된다. 1942년 봄이 되자 전쟁은 다시 시작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히틀러가 남쪽으로 내려와 스탈린그라드라는 도시를 공격 하게 된다.

 

 

스탈린이 히틀러가 스탈린그라드를 공격한 이유는 이곳은 모스크바 와 남부 자원지대를  잊는 수운의 요충지였다. 당시 바쿠는 소련의 최대 유전이 있는 지역으로 전쟁의 필수적인 유전을 확보하기 목적이었다 스탈린그라드 장악시 소련의 석유 수송을 차단 할 수 있고 독일 군에게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8월 23일 새벽 스탈린그라드 상공을 600대 독일 폭격기가 뒤덮는다 여기서 1000톤 이상의 폭탄이 떨어진다. 당신 스탈린그라드 주민수가 600,000 명으로 확성기에서 공습경보를 알렸을 때는 이미 한발 늦은 상태로 폭격 첫 주에 시민 40,000 명이 사망한다 독일군 폭격이 시작되자 시민들은 볼가강 건너편으로 건너서 동쪽으로 도망 가려고 했으나 시민들은 도망 갈 수가 없었다

  1942년 7월 28일 이때 스탈린은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말라는 명령 227호이다. 

 

 

이 명령으로 소련군 내부 전선을 정찰 하면서 무단 이탈 위 도주하는 병사들을 사살하는 저지 부대가 즉결 처형을 했고 또한 형벌 부대가 있었는데 스탈린이 명령에 따라 편성된 탈영병과 민간인 중범죄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40만명에 이르렀고 이들은 지뢰제거나 공격의 최일선 총알받이로 들어갔다.

페허가 된 도시에서 독일군들은 쉽게 전진 할 수가 없었다 도시 곳곳에서는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은 하나 하나가 요새가 되었고 소규모로 구성된 군인들 간에 참혹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

 

시가전의 패턴

 

T-34 소련 전차군단 VS 독일 전차 비교

 

소련의 여군들

영화 Enemy at the Gates에 나오는 주인공 저격수는 실제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저격수로 공식기록상 한 달간 225명을 사살했고 사망한 적군의 수와 발사한 총알의 수가 1발 차이라는 전설이 있다.

 

소련 전설의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 1915~1991

2천여명이 넘는 소련 저격수가 활동했고 그 중에 최고의 저격수는 파블리첸코로 독일군 309명을 사살해 죽음의 숙녀로 불렸다.

 


당시 소련 군에는 여군이 없었던 병과가 거의 없었다 간호병 통신병 등 대부분 여성이었고  모든 병과에 투입된 여성들이었다. 영국이 여군을 최초로 징집한 국가라면 소련은 최초로 여군을 전투의 투입한 나라이다.

 

1942년 세계 최초 여성 폭격기 부대 편성588야간폭격부대

당시 여성 군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는 않아서 여성 군인들이 전투기를 조종하겠다고 요청했으나 이를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끊임없는 여군들의 요구가 이어지자 1차 세계대전때 사용했던 낙후 기종을 여성 조종사들에게 배치했다.

 

날개가 여러개인 비행기라고 해서 복엽기로 1920년대 후반 소련에서 개발된 다목적 경량 항공기소 주로 수송, 연락, 훈련의 용도로 쓰였던 비행기이다. 최대속도 약 150km/h에 100마력 정도의 엔진을 장착/ 목제 뼈대에 캔버스 천으로 덮힌 비행기를 이용해 밤에 적의 상공을 날아가 조용히 엔진을 끈 상태에서 폭탄을 투하



천왕성 작전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소련군의 평균 생존 시간은 24시간이었다. 결국 스탈린그라드는 독일군이 90%를 점령하게 되고 희망이 사라진 도시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반전이 일어난다. 스탈린그라드 외곽에서 1,000,000 명의 소련군이 집결하게 되고 11월 19일 새벽 소련군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소련군의 기습공격으로 독일군은 순식간에 붕괴된다. 작전 개시 4일후 남북으로 진격하던 소련군의 두 병력이 합류하면서 스탈린그라드 안에 독일군 300,000 명이 포위된다 이렇게 천왕성 작전은 성공하고 이 작전의 성공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분수령이 되는 순간이었다 .

 


이 작전을 위해 철저한 보안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작전 개시 전에 스탈린그라드 안에 있어서 교전 중이던 소련 사령관 바실리 추이코프도 몰랐던 작전이다. 소련군의 뛰어난 전술 중에 하나로 독일군의 눈을 피해 병력을 결집시키는 기만 전술이 뛰어났다. 당시 소련은 독일군에게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를 빼앗긴 상태였고 이때 미국이 소련군에게 아낌없이 물자를 제공해 준다.

 


소련군에 포위된 독일군에게 히틀러는 끝까지 물러서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독일군 장군에게 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이 명령을 받은 독일군 사령관은 9만명의 부하를 데리고 다음날 항복한다. 이렇게 6개월간 지속된(1942,8.23 ~1943,2.2)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독일의 패배로 끝이난다. 독일군이 2차 세계 대전 때 썼던 현지에 개수는 400억통이 넘는다.

 



이렇게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는 독일의 전쟁계획을 수렁에 빠트린다.  이전까지 독일은 무패를 신화를 가지던 국가였으나 스탈린그다드 전투에 패배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 된다. 

 

독소 전쟁 흐름. 

 

1.히틀러는 왜 소련을 공격했나? (독소 불가침 조약 파기 이유 )

 

2. 레닌그라드 전투 (900일 봉쇄작전)

 

3. 스탈린그라드전투

 

4. 베를린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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