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신분제도는 양천제 신분으로 법적 규정보다는 사회적 통념으로 결정되었다. 신분간의 장벽이 두껍고 사회적 이동 통로가 제한되었다. 신분하락은 순식간이지만 올라가는 것은 어려웠다. 사농공상은 이 양인의 직업을 4가지로 분류한 것과 같다. 그러나 사농공상이란 말은 조선시대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조선 사회는 직업에 따른 사회계급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농공상'이다.
하늘의 뜻을 읽어 왕을 보필하는 일 사
땅을 일궈 곡식을 생산하는 일 농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일 공
사 농 공을 연결해주는 일 상
집주름(=사쾌) 란?
사쾌->집주름-> 부동산 중개업으로 명맥을 이어온 조선시대 고액 직업이다. 집주름이 본격적인 직업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16세기로 추정하며 처음에는 유교 사회에서 천시받았던 직업이나 18세기 후반 상업의 발전으로 한양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주택거래가 늘어나며 집주름 활동이 활발해졌다.
조선시대 가장 비싼 땅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강남 강북으로 나뉘는데 강북을 북촌으로 한양 부유층이 주로 거주했고 청계천 남쪽은 남촌이라 불리며 몰락한 지식인들 양반과 선비가 거주했다. 집주름의 주요 거래 대상은 북촌에 위치한 고가의 집을 대상으로 했다.
조선의 집주름은 구역 할당제로 독점이 가능했다. 고액의 수수료 10% 를 받으며 집을 중개했다. 일제 강점기는 근대문물의 유입으로 수수료 조정기를 거치게 되고 집주름들이 조직화하면서 서로 연대해 이익집단으로 발전하게 된다. (가옥 중개인 조합=집주름 조합) 가옥 중개인 조합 수수료 규정 3% 였다. (1억->300만 원 수수료) 그 후 가옥 중개인 조합은 독립된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공인중개사의 시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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