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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

JP 김종필 : 2인자로 살아남은 법

by 365 ^^ 2023. 9. 5.

JP 김종필은 박정희 군사정부, 김영삼 문민정부 , 김대중 국민의 정부까지 43년동안 2인자의 자리를 지킨 정치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 후 1979년 10월 26일 이후 가장 큰 현안은 새 대통령 선출이었다. 그때 떠오르던 인물이 최규하와 김종필이었다.   5.16 군사정변의 실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육사 8기생이었고 그 당시 김종필은 쿠데타의 실질적인 설계자이자 책략을 담당했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명칭도 JP 의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JP는  제 1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 

 

 

장충체육관에서 실시한 제 10대 대통령 선거에서 최규하가 96.6% 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리고 6일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신군부 세력의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에 최규하 대통령은 무력해지고 실질적인 권력은 전두환과 신군부가 장악하게 된다. 18년  전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았던 JP 앞에 그때와 똑같은 일이 반복된 것이다. 

 

신군부는 JP 재산을 몰수한다. 당시 JP의 재산이 어마어마했다. 1980년 기준 213억 4천여만원이었는데 강제 헌납당한다. 이후 JP는 1980년 9월 정계를 은퇴한다. 그리고   JP는 1987년 정계에 다시 복귀한다. 

 

JP 김종필의 활약 

국가재건축의 회의는 5.16 군사정변의 주력 세력이 세운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행사한 국가최고통치기간이었다. 5.16 군사정변때 나이순으로 박정희가 1인자를 차지하면서 김종필은 일인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실을 더 많이 기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961년 6월 10일 중앙정보부를 창설 후 초대부장을 지낸다. 중앙 정보부 원훈이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도 김종필이 만든 것이다. 

 

 

제3, 4공화국 집권여당 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당의 주류로 활동하면서 국회의원 국무총리까지 역임하였던 박정희 시대의 명실상부한 인재였다. 

 

김종필 어록 

4대의혹사건:1963년 군사정변 주체 세력들이 연루된 네 가지 부정부패사건으로.jp 는 실각되어 외유를 떠난다.
기업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체는 과실이 생기면 국민에게 드리는 것이다라는 의미

 

김종필의 처세술 

김종필의 처세술

김종필의 처세술 3번이 그를 말해준다 .1987년 10월 신민주공화당 창당 후 제 13대 대통령 후보로 나선 JP 지만 4등으로 떨어진다. 그 이후의 행보를 보면 1990년 1월 3당을 합당: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한다. 

 

 

또한 제 14대 대선에서 YS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데 도와준다. 그 이후 김영삼과 헤어지고 1995년 충청권보수정당인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다. 

 

 

그리고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가장 큰 정적이라고 할수 있는 DJ 김대중과 손을 잡고 국민의정부를 출범시킨다. JP 김종필은 이렇게 누구와도 손을 잡을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날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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