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은 왜 아시안을 차별할까?
우리는 생각한다. 흑인도 똑같이 소수인종으로 서러움을 받으면서 그들은 왜 동양인을 미워하는 것일까? 그것은 백인들이 만든 프레임 때문이다. 백인들의 인종에 대한 가공물 중 모범 소수민족론이 있다. 1965년 이후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사회에 대거 유입이 된다.
처음에는 드디어 인정받는것 같아 기쁜 일이었겠지만 이것의 폐해는 모범 소수 민족이 있다면 모범적이 못한 민족도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고 그것의 타깃이 바로 흑인이었다.
소수 인종간의 대립을 빚은 사건
1992년 LA흑인 폭동사건
로드니 킹 사건 (1992년 4월)
사건의 발단은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남자가 속도위반으로 백인경찰에게 체포가 되는 과정에서 무차별 구타를 당했고 로드니 킹은 이로 인해 청각장애까지 생겼지만 백인 경찰들이 무죄 처분을 받으면서 이런 인종차별적 판결에 분노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
**두순자 사건
그러나 흑인의 폭동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옮겨가 버린다. 그때 각종 미디어에서 두순자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로드니 킹 사건이 일어나기 2주 한인 타운에서 두순자 사건이 있었다. 한인타운에서 마트를 운영하던 한인 여성 두순자씨가 마트에서 일을 하던 중 15살 흑인소녀 나타샤 홀린스가 주스를 가방에 넣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것을 본 두순자씨는 물건을 훔치는 것이라고 판단해 둘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고 흑인소녀 등 뒤에서 총을 쏴서 어린 소녀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두순자씨 판결 결과는 재범 가능성이 없으므로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400시간으로 풀려난 것이다.
그런데 로드니 킹 사건으로 흑인들이 동요하는 사이에 백인 미디어에서 두순자 사건(두순자씨가 흑인소녀에게 총을 쏘는 장면을 연속해서 방송)을 집중 조명하면서 불똥이 한인사회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한인 가게에서 일어난 흑인 소녀 사건이 알려지며 흑백 갈등에서 한인VS흑인 갈등으로 전환된 것이다.
소수인종 대립 원인
미국의 인종 차별 갈등은 대부분 소수인종 갈등으로 치환된다. (흑인들의 분노를 한인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 당시 백인 거주지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보호했지만 한인 타운은 무방비로 방치했고 분노한 흑인 시위대의 타깃이 된 한인이었다. 이 사건에서 보여주듯 여러 언론사가 일제히 보도하고 공권력까지 가담한 것으로 미국은 백인 주류 사회의 인종차별주의가 뿌리 깊은 서구중심주의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빚어낸 사건인 것이다.
아시안 혐오 범죄 가해자는 대부분 흑인인 것도 여론몰이의 결과
우리는 아시안 혐오 범죄는 흑인이 많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실제 아시아 혐오 범죄 가해자는 75%가 백인이다. 그러나 보도된 장면은 대부분이 흑인이다. 아시안 혐오 범죄마저 잘못된 프레임으로 보고 있는 현실이다.
LA 폭동의 영향
LA폭동 사건으로 한인들은 유색인종으로 미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LA폭동 이후 한인들은 타 인종과의 연대를 모색하며 미국의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그 노력의 결과가 202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한국계 의원 4명을 탄생시켰다. 폭동이 후 약 30년 후에야 한인들이 목소리를 낼수 있게 된 것이다. 나와 조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될수 있기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미국 한인타운 역사 : 파차파 캠프 -LA 코리아타운 탄생 배경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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