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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후쿠시마 원전사고 원인 및 그 후

by 365 ^^ 2021. 6. 3.

후쿠시마 원전 사고 

Fukushima Nuclear Disaster

21세기 최악의 사고로 뽑히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유출된 방사능의 양이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의 약 170개분이라는 충격적인 분석이 나왔다. 2011년 3월 11일 제1원 자력발전소가 위치한 일본 후쿠시마현 오후 2:46분 일본 북동쪽 산리쿠 해역 해저 24km 지점에서 강도 9.0.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일어나고 1시간 반후에 더 큰 재앙인 쓰나미가 덮쳤다. 지진이 일어나고 원자로 자체가 정지된 상태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 크기의 쓰나미가 육지 최대 6KM까지 덮쳤는데 초기 대응이 너무 늦었다.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쓰나미 모습 1
쓰나미 모습 2

이곳의 원전자력 발전소 방파제는 최대 높이 6M에만 대비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날 실제 지진해일 파도 높이는 15M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재앙의 전초전이였다는것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쓰나미가 휩쓴 이 지역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 폭발 모습

쓰나미로 발전소가 모든 전력이 차단되는 스테이션 블랙아웃 sbo로 모든 전력이 차단되니 원자로 핵연료봉(노심) 냉각기능이 상실하면서 냉각수가 흐르지 못한 핵연료봉의 내부 온도는 1200도까지 치솟으며 방호벽, 연료봉이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내부 압력은 점점 높아지고 수소가 발생했고 마침내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이로인해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동급인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 레벨 7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3월 12일 1호기 폭발에 이어 이틀 뒤 2011년 3월 14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3호기 폭발, 다음날은 4호기 수소 폭발 화재로 방사능 물질을 포함한 기체가 대량으로 누출되고 있었다.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2호기에서는 가장 많은 방사성 물질이 다량으로 누출되었다.

 

 

 

 

수많은 과학자가 대지진이 나면 원자로 폭발로  원자로가 녹을 것이니 물과 콘크리트를 준비하라는 경고를 했음에도 일본은 이를 무시했다.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의 제1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게 되고 사고 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수습을 시작한 일본은 매일 발전소 밑으로 산에서 흘러나온 지하수 400톤이 흐르고 있는데 원전사고로 지하수로 흘러 들어간 방사능 폐기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이것을 뒤늦게  파악한 일본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방사능 유출로 폐기물과 오염수가 쌓여갔고 사고 후 10주를 허비 굉장히 미흡한 초기 대응을 보였던 일본으로 인해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규모

 

후쿠시마 원전 폭발 전 후 마을 모습 1
후쿠시마 원전 폭발 전 후 마을 모습 2

 

이 사고로 난민이 16만 명이 발생하고 후쿠시마에서 도쿄까지 250KM의 거리에 방사능 수치가 20배 이상 상승했고 4월 말 바람에 날려 한반도 상공까지 후쿠시마 방사능이 날아왔다. 방사능에 대한 우려로 일부 지연에선 휴교령까지 있었다. 

 

원전 폭발 20km 강제이주 , 30km 선택적 이주, 

'귀환 곤란 구역' 연간 방사선량이 50 mSv 이상의 고농도 오염지역을 의미한다. 이곳은 방사선량이 너무 높아 바리케이트를 치고 접근을 허가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고 머무는 시간도 제한적이다. 

 

후쿠시마 원전폭발 7년 후 후타바 마을 모습: 여전히 방사능 수치가 높아 사람의 통제를 하고 있고 사람이 살수 없는 마을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사망자 15899명 행방불명 2527명 , 부상자 6157명 이 집계되었고 관련 사망자는 지속적으로 늘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원인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는 민영으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원자로를 계속 움직이기 위해서는 열을 식혀줘야 하기 때문에 원자로는 일반적인 담수로 냉각을 한다.  전기로 냉각 장치를 운행할 경우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바닷물을 선택해 후쿠시마 바닷가 바로 앞에 원전을 지었다.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가 많은 나라지만 후쿠시만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 때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원자력발전소의 긴급 전원 정치를 낮은 곳에 위치시켰던 것이 원전 사고의 원인이었다. 사고 원전을 포기할 수 없었던 도쿄전력은 사고 초기 정부에 허위보고를 하며 시간을 지체해 방사능 제어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원전사고 수습상황

또한 일본 정부는 사고 직후 피해 상황을 기록하지 않았다. 원전 폭발 이후 방사능 유출 현황을 측정해야 되는데 일본은 측정을 하지 않고 원전 사고 2달이 지난 시점에도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고 일본의 사건 축소, 은폐의 정황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된 집단소송은 약 30여 권에 이르고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손해배상과 원상회복 청구한 인원은 약 1만 2천 명에 이르고 있다.\

 

 

2021년 일본 7개 마을로 후쿠시마 현 면적 2.5%에 남은 귀환 곤란 구역은 여전히 방사선량이 연간 50 mSV 초과하는 죽음의 땅이다. 원전에는 제거 못한 핵연료가 천 개 이상 남아있고 880톤가량의 핵연료 잔해를 꺼내는 것은 시작도 못했다.  오염수에는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와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가득하지만 일본은 해양방류를 결정한 상태이다.  

 

 

[출처 ytn 다큐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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