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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허난설헌 이야기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62회]

by 365 ^^ 2020. 11. 11.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62회 3]

 

오늘의 탐사지: 강릉 허난설헌 생가

주제: 허난설헌 일대기
출연자: 설민석,노사연

 

 

허난설헌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여성을 초희라고 부른다. 

난설헌은 호이다. (난초 , 눈 , 집 ) 눈속에 난이 있는 집을 의미한다. 

 

 

 
성인이 되면 부르는 이름을 '자' 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여자는 '자'가 없다. 그러나 자와 호를 만들었던 허난설헌이다. 여성의 이름. 자.호가 동시에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는 몇 안되는 여성 중 한명이 허난설헌이다. 

허난설헌의 어린 시절 

 

 
허난설헌이 초등학교 1학년때 한창 귀엽고 예쁠 꼬마 여동생이 가져온 글 하나에 모두들 놀란다. 허난설헌이 신선의 세계에 백옥루라는 누각이 세워졌는데 그곳의 상량식때 초대 받은 것을 상상하며 상량문을 작성한 것이다. 상량문이란 현재 기공식과 비슷한 행사의 상량식때 새로 짓는 건물에 대한 내용 및 축복을 기리는 글을 작성한 것이 상량문이다.
 
게다가 한문으로 쓴 시(=한시) <광한전백옥루상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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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당대 명문장가에게 부탁할 만큼 중요한 존재였던 상량문이다. 허난설헌이 지은 이 상량문은 어른이 그냥 읽기에도 수준 높은 글이었다. 
 
그때부터 가족들이 난설헌을 존중한다. 
 
 
 
허난설헌의 개인교사는 친오빠 허봉이었다. 
허봉 또한 시와 문장력이 뛰어났던 인물로  허봉의 시를 접한 당시 임금 선조 역시 감탄할 정도였다.  그녀에겐 행운이었다. 오빠 허봉은 동생이 더욱 정진할수 있도록 당대 최고의 문인 이달을 소개해준다. 

허균의 <홍길동전>의 실제 모티브였던 이달

 

스승 이달을 통해 세상에 대한 직관 그리고 기득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배우게 된다. 이유는 이달은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나 벼슬길이 막힌 서자의 신분이였던 것이다. 서자 출신과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로서 공감대가 성형되고 하루하루 일취월장 중인 그녀인데 다시 한번 허난설헌을 진화시키는 계기가 찾아온다. 
 
오빠 허봉이 중국에 다녀오면서 두보의 시집 <두율>을 여동생에게 선물한다.

 

 선물한 두보의 시집 뒤에는 오빠 허봉의 글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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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p><p style="text-align: center; clear: none; float: none;"><figure data-ke-type="image" data-ke-style="alignCenter" width="820" height="461" filename="229.jpg" filemime="image/jpeg"><img src="t/cfile@9922E6505FA9F84416" width="820" height="461" filename="229.jpg" filemime="image/jpeg"/><figcaption></figcaption></figure></p><p><br /></p> 이렇게 가족의 난설헌에 대한 존중이 허난설헌을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만들었다고 할수 있다.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span style="font-size: 18pt;">허난설헌의 <새하곡></span></b></div><div style="text-align: justify;"><br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허난설헌의 <새하곡>은 북방의 흉노족과 맞서 싸우는 한족을 묘사한 글이다. </div><div style="text-align: justify;"><p>

 

 

 

허난설헌 생가터

<허균허난설헌기념관에서 생가터는 도보로 3분거리에 있다.>

 
 
허난설헌의 결혼과 불행
 
그녀의 삶을 뒤바꾼 것을 결혼이었다. 허엽의 후손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15살에 혼인을 한 허난설헌은 안동 김씨 가문과 혼담이 오가는 곳은 엄청난 권세 가문이었던 안동 김씨 집안이였다.

 

 
옛날 신랑의 언굴도 모르고 시집가던 시절 예비 신랑을 만나보고 싶다고 한 허난설헌의 청을 거절한 아버지의 뒤를 남자 노비 복장을 하고 따라가서 집안 분위기를 확인했고 남자 집에서 시집을 가고 싶지 않다고 뜻을 밝힌다.

 

그 당시 남자가 장가간다는 남귀여가가 ->여자를 친히 영접한다는 뜻의 '친영례'인 여자가 시집 가는 풍습으로 바뀌던 시절이였다. 결국 원치 않은 안동 김씨 가문과 결혼하게 된 허난설헌이다. 

 
허난설헌의 재능은 남편에게 질투심 가득 불러 일으켰고 남편은 계속해서 과거시험에 떨어진다.  결국 허난설헌 남편은 과거에 급제하지만 그해는 허난설헌이 죽은 해였다. 여자가 잘못들어와서 집안이 우환이 있는것 같은 당시 상황이 마치 허난설헌의 탓으로 보이게 된 안타까운 상황으로 그녀에게 불행만 가져다준 결혼 생활이었다. 
 
허난설헌의 비극
 

 

 
타고난 재능에 비해 기구했던 삶을 살았던 허난설헌은 뛰어난 그녀의 재능을 시기, 질투한 남편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그러던 중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던 그녀의 아버지 허엽은 병을 얻어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객사를 한다. 

 

이후에 두 자녀를 연달아 전염병으로 떠나보낸다. 그리고 아이를 또 가졌으나 뱃속에서 아이를 또 유산을 하면서 아이 셋을 모두 떠나 보낸다. 
 
두 아이를 읽은 비통한 마음을 담은 그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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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에 허난설헌과 두 아이의 묘가 같이 있다. 
 
위쪽에는 남편 김성립의 묘도 있다.

 

아버지에 이어 세 아이 마저 잃었는데 동생을 위로해 주고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허난설헌의 스승이자 오빠 허봉은 율곡 이이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귀양을 떠나게 된다.

 

 

방랑생활 끝에 병을 얻어 친오빠 허봉마저 죽는다. 

 

 

연이은 불행을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가고 23세에 자신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한 시를 남긴다. 
 
27살에 생을 마감한 허난설헌이 23살에 쓴 시 
 

 

 

 
거짓말처럼 그녀는 4년 뒤 죽음을 맞이한다.
 
 
 
 
허난설헌의 죽음 
 
허난설헌의 마지막 유언은 자신의 시를 모두 불태워 달라고 동생 허균에게 남긴다. 

 

허균은 천여 수 정도로 추정되는 허난설헌의 작품을 불태운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삶의 궤적이자 그녀 자체였던 주옥같은 작품들이 이대로 끝나는 것은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미 다 태워버렸던 작품들이었다. 
 
허난설헌의 부활

 

 
누이의 작품이 잊혀지는게 안타까웠던 동생 허균이 했던 행동은 종이를 펴고 먹을 갈고 붓을 들어서 자신이 암기하고 있던 누이의 시들을 필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오늘날 회자되고 있는 있는 허난설헌의 작품은 허균의 필사와 친정집에 흩어져 남아 있었던 허난설헌의 시를 모아서 허균은 <난설헌집> 초고를 만들었다. 

 
그러나 단지 아녀자라는 이유와 조선 중기 여성의 재능을 인정받기 어려웠던 조선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던 <난설헌집>은 출간을 하지 못했다.  
 
허난설헌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째 되던 해 명나라의 시인이 조선의 시와 문장을 수집하러 방문했을때 그를 맞이한 허균은 난설헌의 시 200편을 건네고 이 중국인이 명나라에 가져가서 <난설헌집>을 출간되어 대박이 난다. 무역상인에 의해 일본에도 <난설헌집>이 전해지면서 일본에서도 대인기를 얻게 된다. 

 

난설헌집
중국과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허난설헌의 작품을 조선에서만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부인이나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닌 본인의 실력으로 이름을 알리며 오늘날까지 우리의 가슴에 남아있는 분이다. 

 

 

 

 

62회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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