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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할리우드 역사: 초창기 성장 배경 (113-1)

by 365 ^^ 2023. 8. 24.

글로벌 영화 시장 부동의 1위, 영화 한편 수익이 우리나라 외교부 1년 예산과 맞먹는 약 3조 원가량인 할리우드 영화이다. 영화의 도시 할리우드는 지금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았다. 

 

현재 할리우드 힐

 

당시 헐리우드는 허허벌판인 땅에 과수 재배를 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부동산 업자 윌콕스 부부가 부동산업을 위해 할리우드에 약 15만평의 땅을 구입했다. 당시 평당 1달러도 안되는 가격으로 구입했다. 하비 윌콕스 부부가 땅을 팔기 위해 지은 이름 할리우드였다. 

 

할리우드 이름의 기원

윌콕스 부인이 할리우드 지역에서 나무를 끌던 사람을 마주쳤는데 그의 대답이 이러했다.  

할리우드 나무를 끌다라는 의미

그 이후에 이곳에 도서관, 시청 우체국, 경찰서가 세워지고 1910년경에 로스앤젤레스 주에 편입돼 인구 5천의 도시가 된다.  그리고 영화 제작자들은 뉴욕에 있던 발명왕 에디슨을 피하기 위해 할리우드로 모이게 된다. 1891년 에디슨은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기계, 볼수 있는 기를 발명하고 이후 특허회사(MPPC)를 설립해 영화제작,상영을 독점했다. 

 

 

게다가 획득한 특허권을 무기로 갑질을 시작한다. 키네토스코프는 1대의 기계에 1명만 연속적인 움직임의 영화라고 하기 힘든 영상 볼 수 있는 기계이다. 이 기계를 한 대당 200달러에 판매를 시작한다.  11개월간 판매 수익이 약 8만 9천달러로 25억에서 30억 돈의 벌어들였고 이 기계를 사용하는 회사에 로열티를 주고 미국내 최대 필름 회사 코닥과 독점 계약 후 타 제작사의 필름 사용을 제한하면서 영화 산업을 독점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영화 제작자들은 뉴욕에서 캘리포니아 할리우드로 오게 되고 공교롭게도 동부보다 캘리포니아가 1년 내내 날이 맑고 화창한 날씨 영화를 만들기 좋은 환경을 갖춘 것을 깨닫게 된다. 기술 부족으로 영화를 찍으려면 밝고 강한 빛이 필수였던 20세기였다. 

 

 

할리우드 성장 배경 

이로 인해 헐리우드에 정착하는 영화회사가 하나 둘씩 생겨나게 되었다. 이 시기 영화를 주도했던 것은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이었고 에디슨조차 당대 프랑스 흥행 영화< 달세계 여행>에 필름을 몰래 복제해 미국에 들여와 상영하였다. 

 

 

그러나 제2 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산업시설이 파괴되어 유럽은 암흑으로 변해갔고 할리우드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영화 필름 질산샐룰로오스가 폭탄을 만드는 재료와 같아서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중 필름 대신 폭탄을 제조했던 것이다. 이때 할리우드는 유럽의 의뢰를 받아 선전, 선동 영화를 만들어 수출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할리우드는 유럽의 위기 속에 경쟁상대 없이 급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관

이때 전세계에 지사를 설립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나라에도 수입된다. 1910년부터 영화사와 특약을 맺어 독점적으로 영화를 상영했던 우미관이다. 

우미관 1912년 종로구에 세워진 한국 초창기 상설 영화관 

 

 

할리우드 싸인판 기원

이렇게 할리우드의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할리우드는 점점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게 되고 우리가 아는 사인판도 이때 설치된다. 

 

할리우드랜드 사인판

지금의 사인판은 1932년 9월 페크 엔트위슬이라는 여배우가 간판에 올라갔다가 떨어지게 되었고 당시 사람들은 13이라는 불길한 숫자가 사고의 원인이라고 판단해 LAND를 철거하고 지금의 사인판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현재의 할리우드 사인판

다음 글 보기 113-2

 

헐리우드의 특별한 시스템은 무엇? (113-2)

헐리우드가 2세 세계대전을 계기로 급성장하게 되면서 더이상 옛날의 시골 마을이 아닌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이후 헐리우드는 거대 영화사들을 중심으로 고공행진을 해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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