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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피맛골 (유래) 역사/종로 피맛길

by 365 ^^ 2021.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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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종로에는 궁궐, 육조거리(관청), 시전행랑(관설시장)이 있던 곳으로 궁궐,조정에 필요했던 물품을 공급하거나 궁궐에서 나온 물건을 팔던 상설시장이 아주 크게 있었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운종가라고 불렀다. 

 

1901년 종로 거리 시전행랑 모습

 

피맛골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조선 시대엔 피맛골이 중인이나 상인들의 삶의 공간이었다. 피맛길은 태종 12년(1412) 시전행랑을 조성하면서 만들어졌다. 궁궐과 관청이 가까이 있어 말을 탄 고관대작들이 왕래가 잦은 큰길이었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높은 관직에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행차가 끝날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이런 일이 너무 빈번하자 아예 큰길 양쪽 뒤편의 좁은 골목을 이용하게 되었다. 뒤로 옆으로 작은 길이 생겨 났는데 말을 탄 양반을 피하는 길이다. 라는 뜻에서 피맛길이다.

 

 피할 (피) 말(마) 피마길 =말을 피하는 길

 

이때만 해도 피맛길은 대로의 복잡함을 피해 걸어 다녔던 길로 친구와 막걸리 한잔하던 생활의 일부였다. 피맛길과 청진동이 2009년 재개발로 옛날의 피맛길 구간은 사라지고 일부만 남아있게 된다.

 

2009년 청진동 피맛길

 

옛날의 피맛길은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하늘을 볼수 있었으나 피맛길의 흔적 만이라고 남기기 위해  현재는 건물사이에  복도같이 길만 남겨 놓아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2009년 피맛골(좌) /현재 피맛골(우)

 

추억의 장소 피맛길

비오는 날이면 하늘이 보이던 좁은 골목을 들어서 피맛길 뒤로 굽이굽이 미로 같던 피맛골을 돌아 빈대떡집에 들어가 밖에서 내리는 비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막걸리와 빈대떡을 먹던 장소로 오랫동안 서민 음식문화의 흔적을 이어오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재개발 도중 그곳에 조선시대 집터가 발견되 보존해놓은 곳이 있다.

 

종로 gs 그랑 서울 빌딩 1층

 

그 당시 집터를 그대로 유지시켜놓았는데 작은 주막 같은 선술집터일 것으로 추측하며 조개껍데기가 발견되었는데 백합조개무지가 있는것으로 봐서 이 집의 안주로 조개국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많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피맛골은 재개발 전까지도 피맛골의 빈대떡집과 족발집의 메뉴에서 항상 백합탕을 같이 내왔던 것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알쓸신잡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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