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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녀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이야기

by 365 ^^ 2020. 12. 28.
[선녀들 5,6 회 일부]

 

오늘의 탐사지: 프랑스 파리
주제: 에펠탑 

 

 

 Eiffel Tower

 

 

파리 에펠탑의 탄생 
 

1889년에 파리에서 만국 박람회(=world expo 세계박람회)가 열렸고 박람회의 목적 자체가 개최국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당시는 산업혁명 시대로 철강 생산력과 그 철강을 조합하는 기술이 중요했다.  1889년은 또한 프랑스 대혁명의 100주년이 되는 해로 민주주의 기념 건축물을 만들기로 했고 그 기념물 건축 책임자가 바로 철을 이용해 교량, 다리등을 만들던 구스타프 에펠이다.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상상하기 힘든 높이의 건물을 단시간에 조립하여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 에펠탑이다. 에펠은 비용과 노동력을 적게들여서 25개월 만에 에펠탑을 완성한다.


 

에펠탑 높이 

만들어질 당시 높이 300m 철탑인 에펠탑은 꼭대기에 첨탑 안테나를 덧붙이면서 324m가 되었고 철강 기술의 상징이자 현재 프랑스의 랜드마크가 된다. 

 

 

그러나 이 에펠탑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 소설가, 화가등의 프랑스 셀럽들이 프랑스의 낮고 고풍스러운 석조 건축물들과 조화롭지 못한 이 철탑을 향해 엄청난 비난을 했다.

 

"뼈대만 앙상한 피라미드다 "
"흉물스러운 쇳덩어리가 역사 깊고 우아한 예술의 도시 파리를 망가뜨리고 있다. "
"비극적인 가로등, 괴기스러운 덩어리 "

 

 

 

등의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심지어 철거를 청원하는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소설가 모파상이 에펠탑을 너무 보기 싫어한 나머지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장소인

 

 

에펠탑 안에 있는 식당에서만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비난으로 20년 뒤 철거하기로 했으나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당시 비난을 받던 구스타프 에펠은 오늘날 최고의 건축가로 찬사를 받고 있다. 에펠탑은 1991년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에펠탑은 생각보다 낮다. 파리는 고층건물 규제 정책으로 모든 건물이 180m 이하로 제한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에펠탑이 많이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에펠의 또 다른 걸작품

 
프랑스 대혁명보다 앞섰던 미국 독립전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된 미국의 독립 전쟁 100주년을 기념해서 프랑스에서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1886년)'도 구스타프 에펠이 내부 설계와 조립,운반의 책임자였다. 
 

 

 
에펠의 또 다른 걸작 '자유의 여신상'도 뉴욕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히틀러도 사진찍은 
에펠탑 명당자리 샤요궁
 
에펠탑에 온 히틀러는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 프랑스 정복을 세계에 과시하려 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이 승강기를 일부러 고장내서 히틀러가 오르지 못하게 한다.

 

 

결국 히틀러는 계단이 1,652개인 에펠탑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대신 찾은 곳이 에펠탑 포토 명당 자리이자 히틀러의 욕망이 묻어있는 자리 샤요궁이다.

  

 

 

현재 이곳은 광장이자 박물관이 있고 에펠탑과 마주보는 전경으로 유명하다. 
 

 

에펠탑 야경
 

 

 

 

에펠탑은 밤에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고 한다. 

 

1985년 50억게의 야경 조명시설이 설치된 이후 매시 정각에 10분 동안 불을 켜는 에펠탑은 전기세를 줄이기 위해 5분으로 단축했다.

 

특별한 날에는 불빛을 바꿔가며 레이져 쇼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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