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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표트르 대제 이야기 (벌거벗은 세계사 68회)

by 365 ^^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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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의 롤모델이자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조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표트르 대제는 루스 차르국의 로마노프 황조의 제 4대 차르이자 러시아 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표트르 대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여 유럽을 향한 창을 연 황제이기도 하다. 

 

게임 테트리스 속 도시 모스크바 성 바실리 대성당

 


 

표트르 대제 이전 상황
표트르 대제가 강대국의 꿈을 꿨던 모스크바는 수도를 넘어 러시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도시이다. 15세기 초 대항해 시대를 맞이해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은 일찍이 바다를 넘어 식민지를 건설하고 무역을 시작한다. 활발한 해양 무역을 통해 서유럽 국가들이 부를 축적하는 사이에 15세기 중엽 모스크바 공국은 바닷길이 막혀 있어 낙후된 국가로 취급받고 있었다.  

 

15세기 중엽 모스크바 공국



변방 탈출을 위해서는 바다 건너 유럽 쪽으로 가는 방법만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결과 러시아는 넓은 땅을 차지한다. 그러나 유럽의 강국 반열에는 아직 끼지 못했는데 아래로는 오스만 제국과 폴란드 위로는 스웨덴 강국에 의해 막혀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혼란한 정세 속에 표트르 대제가 등장한다.  

 

1680년 루스 차르국의 영토
강국에 막혀 진출하기 힘든 루스차르국

 

표트르 대제는 누구인가?  

 

표트르 대제를 설명할 중요한 힌트는 배와 망원경인데 해양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러시아 역사상 최초의 함대를 건설한 인물이다. 러시아 제국을 세우고 러시아를 유럽의 강국의 반열에 오를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다.  1672년 표트르 대제는 황자로 태어난다. 루스 차르국 2대 차르 알렉세이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표트르는 단 4년만 평화롭게 보내고 4세가 되던 해 아버지 표트르4세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피를 부르는 후계자 권력 다툼이 시작되었다.  

 

표트르 대제

 

표트르 대제 가계도

아버지와 첫번째 아내에게서는 소피야, 표도르 3세, 이반 5세, 두번째 아내, 나탈리야에서 표트르 1세 를 낳았다. 소피야 공주는 첫째지만 여성이어서 차르에 오르지 못하고 표도르 3세가 오르지만 재위 6년만에 사망한다. 표도르 3세 이후 10살의 표트르 1세가 차르에 오른다. 이반 5세는 어릴 때부터 병약하고 지적 능력이 부족했던 이반 5세이다.  그래서 이복형 이반 5세를 대신해서 차르에 오르게 된 어린 표트르였다.  

 

표트르 대제 가계도


 
소피아 공주의 쿠데타
그런데 표트르가 차르에 오르기 직전 황실의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표트르의 이복누나 소피야 공주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친동생 이반 5세가 아닌 이복동생 표트르가 차르에 오르자 소피야 공주는 표트르 지지파가 이반 5세를 암살했다고 거짓 소문을 낸다. 이 소문의 위력은 대단해 황실 부대가 격분해 궁으로 쳐들어갔던 것이다.  

 

오른쪽 황대부대 왼쪽 표트르



 이들은 거짓 소문임을 확인하고도 난동을 멈추지 않고 표트르의 삼촌과 친척 40여 명을 끌고가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때 표트르는 불과 10세였다.  소피아 공주는 쿠테타에 성공하지만 차마 표트르를 죽이지는 못하고 친동생 이반 5세와 표트르를 공동 차르로 선포한다. 이때 이들이 앉았던 의자가 남아있다. 

소피아 공주는 의자 뒤에 구멍을 내고 그 뒤에 앉아 지시를 했다.



궁에서 쫓겨난 표트르

이후 차르 두 명이 함께 있을 수는 없다고 소피아 공주는 더 어린 표트르를  궁 밖 모스크바에서 10 KM 떨어진 프레오브라젠스코예(황실 영지)로 쫓겨났고 중요한 황실 행사를 제외하고는 궁에 들어 올 수 없었던 표트르였다.   

이때 표트르는 근처의 외국인 마을에 자주 갔었는데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직업이 외국인들을 살았던 집단 거주지로 다양한 직업의 외국인들이 모여살았고 모스크바에서 서유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다.  어린 나이에 궁을 떠나 살았던 표트르는 엄격하고 딱딱한 황실 교육 대신 실용적인 유럽의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배가 대부분이었던 러시아는 당시 정교한 항해기술을 가지고 있던 유럽의 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강대국 군함과 표트르 대제의 배
아버지 차르 알렉세이가 영국에서 선물받은 작은 배
아버지 차르 알렉세이가 영국에서 선물받은 작은 배


1686년 소피아 공주는 강국 폴란드와 평화조약을 체결해서 1687년 오스만제국 전쟁을 위해 크름반도로 원정을 떠난다.   크름반도는 흑해를 품고 크름 산맥에 둘러싸인 전략적 요충지로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분쟁의 초점이 된 지역이기도 하다.  약 700년 전 15세기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두고 오스만제국과 격돌을 하였다. 그러나 소피아 원정군은 전염병과 보급문제로 원정 실패하고 2년 뒤 다시 한번 원정을 하지만 같은 이유로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소피야 공주는 전쟁의 성과를 부풀려 승리한 것처럼 꾸며 표트르가 반발하게 만들었다. 이후 표트르는 소피야 공주에게 저항하고 마침내 그녀를 수녀원에 감금시킨다. 7년 만에 이복 누나를 몰아내고 표트르는 어머니에게 섭정을 맡기고 이반 5세까지 여전히 공동 차르로 인정한다.  

 

 

성 베드로함 

 그러던 중 표트르는 모스크바를 떠나 바다를  아르한겔스크로 갔다. 이곳은 러시아의 유일한 국제 항구로 가서 네덜란드에서 만든 배를 타고 흑해를 탐험했고 자신의 수호성자 이름을 타서 성 베드로 함이라고 칭했다. 이 배는 외국 해역에서 러시아 국기를 달고 취항한 최초의 배가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이 중앙해군 박물관에 전시된 성 베드로함의 깃발
상트페테르부르크이 중앙해군 박물관에 전시된 성 베드로함의 깃발


 성 베드로함의 깃발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앙해군박물관에 전시중이다.  당시 깃발에 그려진 독수리 문양을 현재 러시아 해군이 따와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 해군 문양
현재 러시아 해군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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