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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진시황 불로초를 찾아 제주도로.. 불로불사 꿈꾸다.

by 365 ^^ 2021. 2. 18.

기원전 221년 마침내 혼란을 잠재운 진시황은 중국 함양 궁에서 자신을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 '황제'라 부를 것을 명한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20살에 친정을 시작하고 10년의 전쟁을 통해 중국을 통일한 후 절대군주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이런 진시황에게도 아직 이루지 못한 야망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죽음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이에 진시황제는 불로불사의 꿈을 꾸게 된다. 진시황은 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불로초를 찾아 전국으로 신하들을 보냈다. 어느 날 신하 중 한 명인  '서불'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불로초를 구해오겠다고 한다.

 

사마천<사기> 속 서불 이야기

서불(=서북)은 제나라 출신의 방사로 진시황에게 거금을 하사받아  3000여 명의 남녀 아동을 이끌고 동쪽 나라로 향하여 한반도, 일본 열도의 여러 지방에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불의 여행 루트
불로초 찾아 삼신산으로 떠나는 서복

 

제주도에 남아 있는 서불 흔적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속의 세 신산인 봉래산, 방장상, 영주산이 있는데 서불은 제주에 있는 전설의 삼신산 중 하나인 영주산(=한라산)에 가기위해 제주의 조천포구에 도착한다. 

 

조천포구에 도착한 서불일행
이후 한라산에 오른다.

 조천포에서 영주산으로 올라간 서불 일행은 고산지대에만 자라는 시로미와 영지버섯 당귀를 채취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한라산의 약초들

실제로 우리나라 제주도 정방폭포에 서불에 대한 전설이 있다고 한다. 한라산의 불로초?를 캐고 돌아가던 서불은 제주의 절경을 보고 제주도의 정방폭포에 감탄하여 서불과차(=서불이 지나갔다)라는 글자를 새기고 돌아갔다고 한다. 제주도 조천포에 상륙 후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영주산(=한라산)에 올랐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서불과차는 진시황제 이후 새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에는 서불(서복)의 이야기를 전시해 놓은 전시관인 서복전시관이 있다. 이곳에는 진시황과 서불(서복)의 이야기를 전시해 놓은 곳이다. 

 

제주 서복 전시관
진시황과 서불이야기를 전시

서귀포의 지명 또한 서불(서복)이 들렀다가 다시 서쪽으로 돌아간 자리에서 서귀포의 지명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서귀포 지명의 유래

또 다른 곳 남해 인근 지역에서도 서불과차 추정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남해 양아리 석각에 새겨진 서불의 또 다른 흔적

그러나 서불이 진시황에게로 돌아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 제주도나 남해인근 서불과차 흔적들은 어디까지나 추정과 설이다. 이것이 사실이었다면 벌써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출처 역사저널 그날 패널 357회 중] 

 

이렇게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중에 하나가 스스로 시선이 되려고 한 것이다. 자칭 신선이라는 두 사람이 나타나 우리가 불사약을 구하러 갔지만 방해물이 있으니 불사약을 구하려면 황제 스스로 진인(도를 깨쳐 깊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되어야 한다.

 

 

 

 

진인이 되려면 황제의 거처를 아무도 몰라야 한다고 말하니 진시황제는 지금부터 당장 자신읜 진인이라고 하고 짐이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한다. 그리고 수도 함양 부근 궁관 270곳을 구름다리로 다 연결하고 매일 거처를 옮겨 종적을 숨겼으며 진시황제의 거처를 발설하지 못하도록 그 안에 배치된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한다.

 

함양궁을 구름다리로 연결
매일 거처를 옮기는 진시황

 

그러던 어느 날 행차 중에 양산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신하의 수와 수레의 수가 너무 많다고 않잖아 했는데 그다음 날 수레와 신하의 수가 확연히 줄어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 자신의 말을 발설했다며 범인 색출에 나서지만 아무도 죄를 인정하지 않자 모두 죽인다.  그 사건 이후 진시황제가 행차한 곳을 아는 자는 없었다. 

 

수은을 마시는 진시황

 

어느 날 진시황제는 어의가 불로초라고 줬던 수은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이후에 5번째 전국 순행을 돌던 어느 날 그는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는데 수은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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