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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에밋 틸 살해 사건 118-2

by 365 ^^ 2023. 9. 30.

[이전글] 백인 우월주의 기원..: 짐 크로 법

 

노예법이 폐지되고도 100년을 이어왔던 노예제도였다. 그러나 1955년 흑인 차별 저항 운동을 촉발한 사건 중 하나 에밋 틸 살해 사건이 발생한다.  에밋 틸은 14세 시카고 흑인 소년이었는데 백인 부부가 운영하는 식료품 가게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다가 식료품 여주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고 했고 이를 자신의 가족들에게 말하게 된다. 

 

 

상황을 전달받은 여주인의 지인들이 그날 밤 에밋 틸을 밤에 납치해서 린치를 하게 된다. 에밋 틸은 3일간 행방불명이 됐고 나중에 시카고 강에서 에밋 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에밋틸은 극심한 폭행과 고문을 당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여주인의 남편과 이복동생인 납치범들은 경차 조사에 의해 잡혔다. 

 

 

이들은 흑인 남자 아이가 여주인에게 추근거렸고 남부의 전통상 법정에 갈필요도 없이 알아서 손을 본다는 식으로 무엇이 문제냐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을 본 것도 황망한 일인데 죽어 마땅했다는 용의자들의 뻔뻔한 태도까지 ... 

 

 

사건 직후 에밋 틸의 어머니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에밋 틸의 시신을 장례식에서 공개한 것이다. 그 뿐만아니라 사진을 찍어 언론에도 배포했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으로 알려지게 되고 에밋 틸의 시신을 본 이들은 분노했다. 이로 인해 흑인 민권을 존중받기 위한 움직임들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에밋틸이 잡지에 공개된 사진(혐오장면 포함 pw: 1111) 

 

에밋 틸 사건의 용의자들이 재판에 기소되었고 배심원단의 판결이 무죄로 판결을 내렸다. 전부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들때문이었다. 기소당한 백인들의 변호비까지 지원했다. 결국 이들은 무죄를 선고받는다. 

 

백인 배심원단 

경찰이 문제 삼지 않을 만큼 흔히 벌어졌던 흑인 차별이었고 에밋 틸 사건도 묻힐 뻔했으나 에밋 틸 어머니가 아들의 시신을 공개하며 경찰 조사와 재판까지 이루어진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후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1955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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