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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북한 전투기 조종사 이철수 귀순 이유 : 북한 조종사 특이한 선발기준

by 365 ^^ 2024. 9. 11.

전술조치선이란? 

북한 군용기의 남하 등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군사분계선과 서해 북방한계선으로 부터 북쪽으로 20~50km 상공에 설정한 가상선으로 북한 전투기 남하 시 한국 전투기가 즉각 출격해  대응 비행을 해야 한다. 

 

전술조치선 TAL

 

이철수 조종사 귀순 과정

1996년 5월 23일 이웅평 귀순에 이어 13년 만에 초음속 전투기를 몰고 귀순한 북한 조종사가 있다. 오전 10시 43분 북한의 레이더망을 피해 빠른 속도로 남하하는 미그-19기는 우리 공군 레이더에 포착되고  공군사령부는 즉각 긴급 명령을 내려 한국 제공호 2대와 팬텀 2대를 긴급 출동시켰다. 북한 미그-19기는 842km/h 속도로 남하했고 최대 시속 약 1500km/h 까지 나오는 전투기였다. 

 

 

 

전술조치선을 넘은 미그 f-19였고 마침 그때 서해상에서 남한 F-16기는 초계비행(적의 공습으로부터 특정한 대상물을 보호하기 위한 배행) 중이었다. 남한 F-16기가 남방 한계선으로 이동했고 북한 미그-19가 우리 공군기를 향해 날개를 상하로 흔들어 귀순 의사를 표시했고 즉각 우리 공군의 에스코트를 받으로 무사히 수원 비행장에 착륙한다. 

 

이철수 조종사의 귀순 후 첫 사진

 

연료가 거의 다 소진된 상태였고 연료 눈금이 마이너스 50까지 돼서 긴장이 많이 되었다. 그렇게 39분간 비행후 비상 착륙을 수원비행장에 했다. 수원 비행장에 착륙후 10분 정도 가만히 있었고 그 후 비행기 엔진을 끄고 조종석 덮개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자 귀순자로 판단 후 공군 헌병대가 전투기로 접근했고 기사들도 사진을 찍으며 환영했다. 이후 기자회견을 했다.

 

기사회견때 귀순 이유

 

 

북한 조종사 귀순이 중요한 이유 

대낮에 겁 없이 NLL을 넘어온 북한 전투기였다. 사이렌이 울리면서 전국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이철수 파일럿은 귀순후 기사회견때 초조함과 불안함을 잊기 위해 양주 한병을 마시고 기사회견을 했다고 한다. 북한 조종사 귀순이 중요한 이유는 파일럿 한 명만 귀순해도 북한의 모든 공군 정보를 알수 있다. 북한 공군의 전술, 전력 배치, 방공망, 보급기지 등 북한 공군의 모든 정보를 고스란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조종사 특이한 선발기준

북한에서 파일럿이 되려면 출신 성분이 몇대에 걸쳐 깨끗해야 된다. 이철수 조종사의 아버지는 함경북도 유일의 여객기 취항 비행장 '어랑 비행장' 공군 소속 엔지니어였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전투기 조종사가 되었다. 

 

전투기 조종사 선발 시험은 상당히 까다롭다. 체력 테스트는 물론이고 2년 동안 공통과목을 공부하고 신체검사를 받은 후 항공의학연구소에서 사람이 나와 조종사가 될 사람들의 관상, 손금을 본다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상체질까지 검사하는 태양인, 태음인은 비행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체질이고 비행사고가 가장 적게 나는 체질이 소양인 소음인이라 전투기 조종사는 소양인, 소음인만 선발, 헬기, 폭격기 조종사들은 태양인, 태음인을 선발한다. 

 

 

 

북한 조종사 대우 

북한에서도 공군이라고 하면 여자들에게 선망을 대상이 될 정도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일반 주민들은 보기도 힘든 소고기, 닭고기, 초콜릿 버터 등 배급품을 지급하고 끼니마다 12~16가지 반찬이 나온다. 공군들은 김정은이 피우는 여명 담배도 같이 피우고 가죽재킷도 공군 비행사에게는 지급된다. 이철수 조종사는 당성과 충성도가 높은 북한의 선택된 계급에게만 주는 명함 시계도 받았다. 

 

 

북한 조종사 1인당 수십억 원이 투자되기 때문에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 이런 최고급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조종사 가족들도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심지어 사람을 죽여도 비판 한번으로 끝난다고 한다. 

 

이철수 조종사의 귀순 이유 

1992년 이철수 조종사는 3급 국가 훈장을 받았다. 총 6차례 걸쳐 훈장과 메달을 받은 조종사 중에서도 탑 티어였다. 어느 날 뉴스를 보고 있었다. 온천 비행장에는 김씨 가문을 위한 과수 농장이 있는데 가을철이 되면 다음 해에도 달고 맛있는 자두로 크라고 설탕 100kg씩 나무마다 밑에 묻는다. 거기서 일하던 아줌마가 집에다 이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집 아들이 배가 고파서 철조망 밑을 파고 과수 농장으로 들어가 나무밑에 묻은 설탕을 숨쳐먹은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도둑으로 몰려 공개 총살을 당한 것이다. 그 아들은 8살이었다. 이런 상황을 뉴스를 통해 형제와도 같은 동기와 보고 있었고 이철수 조종사가 동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동기가 스파이였던 것이다. 동기는 이철수 조종사를 사상투쟁 비판자 대상로 지목했고 70명 앞에서 비판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후 이철수는 계속적으로 감시를 당했고 동료들로 부터 조직적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1996년 다시한번 당성 단련 사상투쟁 대상으로 선발되었고 이에 귀순을 결심하게 된다. 이철수 조종사는 대한민국이 좋아서 온 것이 아니였다. 북한의 지옥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 하나로 온 것이다. 

 

보상금은? 

당시 미그-19기 보상금으로 약 2억 2천만원, 이외 정보 제공료 2억 2천만원, 생활 정착금까지 모두 5억여 원을 지급했다. 30년 전 5억은 엄청난 가치였을 것이다. 

 

이철수 조종사 귀순 후 

이철수 조종사 귀순후 북한군 공군은 비행기가 뜰때 연료를 다 채우지 않고 이철수 조종사가 지나온 해주 일대에 지대공 미사일을 설치했다.

 

 

이철수 조종사 귀순 당시 수원을 포함한 인천과 경기도에는 경계경보가 내려졌는데 서울에는 경계경보가 발령되지 않았다. 이것이 실제 상황이었다면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경계작전 실패였던 것이다. 당시 내무부 중앙통제소에서 경계경보를 발령해야 하는데 그때 경계경보 시스템이 고장이 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서울시 방공망이 뚫렸다는 비난에 당시 조순 서울시장이 긴급 사과문을 발표하고 관련된 서울시 관계자 4명이 직위 해제되었다. 이철수 조종사가 귀순으로 서울시 방공망의 오류를 알게 된것이다. 

 

귀순한 이철수 조종사는 북 공군 전투기 조종사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1996년 12월에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특별 임관되었고 2022년 대령 예편 전까지 26년간 북한군의 실상을 알렸고 후배 양성 및 대한민국 공군력 향상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이만갑 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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