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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

북한의 남침 땅굴

by 365 ^^ 2024. 1. 16.

현재 발견된 남침용 땅굴은 4개이지만 최소 5~7개 땅굴이 더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제 1 땅굴 

 

경기도 연천 1974년 11월 15일 발견된 제 1땅굴을 라면 땅굴이라고 부르는데 어느 날 땅 밑에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북한군이 땅밑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수중기 때문에 제 1땅굴이 발각되었다. 지표면에서 불과 45cm 아래였다. 두꺼운 벽과 신속한 침투를 위한 레일까지 마련되있었다. 

 

 

제 1 땅굴은 넓이가 90cm , 높이 1.2m 총길이 3.5 m  로 굉장히 좁은 땅굴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1시간 안에 1대 연대 약 3000명이 이동할수 있는 땅굴이었다. 밑에 레일이 설치되어 있어 레일 위 궤도차로 침투할 계획을 세운듯 하다. 북한은 모든 중대 이상급 전투 단위에 막사 이전에 땅굴이 있어야 된다. 북한 땅굴은 병력 은폐 및 대피를 위한 땅굴로 90cm 너비로 규격화되어 있다. 이 넓이의 땅굴을 만들려면 1개 중대 100명이 3년간 파야한다. 

 

제 1땅굴이 발견된 순간이 오전 8시 5분이었는데 그때 북한 초소에서 갑자기 사격을 시작하여 DMZ에서 교전이 일어났다. 높은 곳에서 한국쪽을 동태를 살피던 북한이 땅굴이 들키자 바로 사격을 했던 것이다. 무려 1시간 15분 동안 300여 발의 실탄이 오갔다. 안타깝게도 국군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제 2 땅굴 

제 2 땅굴은 1975년 3월 24일 강원도 철원에서 발견되었다. 제 1 땅굴보다 더 정교해고 커져 있었다. 

 

제 2땅굴 광장땅굴

 

제 2땅굴은 당시 매우 추웠는데 국군 9명이 수색 중이었다. 땅 위의 수증기를 발견한다. 이것을 온천이라고 생각하고 파들어갔더니 땅굴이 발견된 것이다. 땅굴은 제 1땅굴 발견전부터 찾고 있었는데 이유는 근처 옹달샘에 이런 새벽임에도 계속 파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2m 간격으로 탐지하다가 발견되었다. 

 

시추기를 통해 나오는 화강암층 돌의 길이로 파악 

 

시추기를 통해 나온 돌이 다 나오면 땅굴이 없고 빈 공간이 있으면 땅굴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시추공에서 냄새까지 나서 냄새를 잘 맏는 사람을 섭외했는데 양담배 냄새였다. 

 

북한이 땅굴을 팔때 경사를 1/1000 정도로 만드는 이유는 땅굴을 팔때 물이 나오기 때문에 물이 자동적으로 아래로 흘러가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끝에 물탱크를 만들어 놓고 물이 차면 양수기로 물을 뽑아낸다. 

 

땅굴 구조 

 

또한 발파 작업때 소리가 나기 때문에 동시에 지상에서 다른 걸 터트려 발파 은폐 교란 작전을 하는 것이다. 미군의 위성 감시를 받는 상황에서 토사, 암석, 부스러기를 처리할 때 위성으로 관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홁과 돌은 과일상자에 넣어 위성 사진에 들키지 않게 위장한다. 

 

 

제 2 땅굴은 1 땅굴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컸다. 마치 지하에 1개 소대가 정렬해도 될 만큼 큰 공간이 발견된 것이다. 제 2 땅굴은 높이 2m 너비 2m 로 1시간에 만 명이상이 이동할수 있는 땅굴이다. 완전무장한 군인 뿐만아니라 차량 및 탱크까지 이동이 가능한 공간이다.

 

제 3 땅굴 

1978년 제 3 땅굴은 서울에서 불과 52km 떨어진 곳으로 서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제 3 땅굴 발굴의 시작은 북한 귀순병의 증언에서 비롯되었다. 김부성은 개성근처에서 남한 땅굴을 파던 측량사였다. 

 

제 3 땅굴 위치 =서울 땅굴

 

1시간에 3만여 명 무장병력이 이동가능한 땅굴이다. 김부성의 말을 듣고 판문점 주변으로 시추 작업을 한 상태였으나 땅굴이 발견되지 않았다. 북한이 김부성이 탈북한 이후 작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우리도 작업을 중단했는데 어느날 우리측에서 파 놓은 시추 구멍에서 물이 갑자기 솟아오른 것이다. 북한이 남측이 작업을 중단한 것을 알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고 다이나마이트를 터트리면서 폭발 압력으로 인해 물이 솟아올랐던 것이다. 

 

 

 

제 4 땅굴 

1983년 귀순한 북한 최전방 부대 참모장 신중철의 제보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땅굴이 발견되기 까지는 7년의 시간이 걸렸다. 동부전선은 산이 높아 땅굴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1989년 12월 24일 성탄절 전날 땅굴을 찾기 위한 시추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땅을 아무리 파도 안 나왔다. 이때 나무사이에 앉아 있던 꾀꼬리 한 마리를 참 예쁘다 하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날아올라 갔다. 꾀꼬리가 날아간 쪽으로 시간이 있어서 올라가 시추를 했는데 물을 부었더니 땅 밑으로 물이 흘러 버려졌고 시추 기계까지 땅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또한 땅 밑에서 수상한 소리가 났고 시추된 구멍 안으로 카메라 투입해서 살펴봤더니 철도 레일, 쇠 파이프 등 사람이 다닌 흔적이 발견되었다. 또 카메라를 틀어 벽 쪽을 확인해 보니 벽에 선명한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땅굴 발견과 함께 이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로 붙였다. 북한군은 자신들의 활동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에서 보안 유지를 위해 발견 현장 출입을 통제했다. 그리고 우리쪽에서 역갱도를 파기 시작했다. 2달간의 역 갱도 작업과 동시에 폐탄광에서 극기훈련등 37가지의 훈련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갱도로 침투된 날 앞에 목함지뢰로 보이는 것이 확인 되었고 이때 군견을 보내 목함지뢰를 밝고 군견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북한이 파놓은 땅굴을 뚫고 군사분계선까지 진격해 3중 콘크리트를 발라 북한이 만들어 놓은 땅굴을 무력화 시켰다. 

 

 

이때 산화된 군견 헌트에게는 군견 최초로 소위로 추서되었고 제 4땅굴 입구에 헌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헌트는 여전히 북쪽을 바라보며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 

 

북한 땅굴: 하마스 땅굴 유사성, 위험성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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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는 땅굴이 여러개가 있는데 한 개 분대부터 대대까지 수용할수 있는 여러 땅굴이 존재한다. 식량만 있으면 1~2년은 거뜬히 생존가능하다. 북한의 땅굴에는 기본 생활권외에도 사격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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