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내용]대항해 시대를 연 포르투갈이 인도항로 개척 이유
대항로 개척의 토대를 만든 엔히크 왕자
바스코 다가마의 후원자는 포르투칼이 항해왕자 엔히크 왕자이다. 포르투갈의 대항로 개척의 토대를 만든 왕자이다.
엔히크 왕자의 고민
포르투갈이 부국강병 해야 하는데 이베리아 반도(포르투갈와 스페인이 있는 곳) 제일 변방으로 농사짓기에는 땅이 척박 했던 포르투갈은 상대적으로 불리했던 지리적 조건이었다.
그래서 포르투갈의 서남쪽 끝 사그레스 곶에 항해 연구소를 설립한다. 이곳에서 배 축조, 지도제작, 별자리 연구등을 했다. 이 항해 연구소의 최대 걸작은 그 당시 최첨단 항해 범선인 많은 물건과 대포등을 실을수 있는 캐러벨을 발명한다.
엔히크가 이런 토대를 만들고 사망하자 후대 왕 마누엘 1세 시기에 포르투갈에서 아프리카 개척을 시도한다. 그때 모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의 남쪽 끝까지 도달한다. 처음엔 폭퐁의 곶이라 명명했으나 인도로 갈 수 있는 희망을 심기 위해 포르투갈 왕실에 의해 ‘희망봉’ 으로 개칭했다.
1456년 교황은 미지의 세계였던 카보 보자도로 곶 이남의 땅들에 대한 포르투갈에게 독점권을 주는 교황칙령을 발표한다.
이는 옆나라 스페인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대항해 역사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옆 나라 스페인에서 콜롬버스라는 사람이 인도를 발견했다는 소식이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
1456년 교황칙령에 따르면 카보 보자도르 곶 남단으로 발견되는 땅은 자신의 땅이였는데 (인도는 엄연히 포르투갈의 땅) 포르투갈은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스페인 태생 교황은 아프리카 이남에 카보베르데 섬 서쪽으로 480km 떨어진 지점을 분기점으로 왼쪽으로 발견되는 땅은 스페인령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 스페인을 만나 협상을 체결하게 되는데 (토르데시야스 조약) 앞으로 왼쪽으로 발견되는 땅은 스페인땅 , 오른쪽 발견되는 땅은 포르투갈령이라는 협약을 맺는다.1494년 두 나라가 마음대로 세계를 갈라 먹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이다 .
바스코 다가마 인도 항로 개척
서쪽 항로는 이미 스페인이 개척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항해를 재개한 포르투갈은 인도 대륙 항로를 개척할 계획을 세운다. 그때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를 찾아 떠나게 된다. 바르톨로메우 디아스의 안내로 희망봉을 거쳐 떠난지 300 여일만에 인도에 도달한다.
바스코 다가마의 활약으로 인도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은 본격적인 교역을 시작한다. 아프리카의 천연 자원을 넘어 향신료 후추 등 동양의 특산물까지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된 포르투갈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스페인이 약탈할 때 포르투갈은 동시대 아프리카와 인도를 약탈하고 있었다. 대항해 시대의 명암이었다.
콜롬버스가 그렇게 발견하길 원했던 인도의 항로를 바스코 다가마가 발견한 것이다.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 항로 개척을 위해 떠났던 출항지로 이곳에 발견 기념비가 있다. 인도 항로 개척자 바스코 다가마의 무덤에 있는 곳이 바로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바스코 다가마 무덤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발견 기념비 (포르투갈 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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