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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님

by 365 ^^ 2020.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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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회]
 

 독립운동가 이시영 선생님 (1869~1953)

남산 이시영 선생님 동상

부자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지 많은 않은 요즘인데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이시영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이시영 선생님은 6형제였다. 집안이 명문가였고 명동, 황해도 일대에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던 재력가의 가문이였다. 나라가 망한 때에 6형제는 모여서 나라가 망했는데 무엇을 할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를 한다. 전원 만장일치로 만주에 독립군기지를 만들기로 하고 재산을 독립군에 기부하기로 결정한다.  

 

수많은 땅과 재산을 일본에게 빼앗기고 남은 재산을 처분한 돈을 가지고 만주로 가기 위해 압록강을 넘어가는데 추운 겨울날, 가족들과 강을 건넌 후에 뱃사공에게 엄청 많은 돈을 건낸다. 
 
뱃사공: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이시영: 우리가 독립군 기지를 세우면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을 지날것인데 그들은 돈이 없이 없습니다. 독립 운동을 위해 모일 젊은이들의 뱃삯을 미리내는 것이니 그들이 오면 돈을 받지 마세요

그리고 남은 돈으로 독립군을 양성 하기 위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다. 이 학교는 독립군의 중심이 된다. 만주의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 김원봉의 의열단,영화 <암살> 속 전지현이 속한 독립군의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같은 분들이 신흥무관학교 학생출신이였다.
 
이시영 선생의 6형제는 독립이전에 대부분 돌아가신다. 
넷째 이회영 선생은 모진 고문으로 사망
 
6형제 중 유일한 생존자가 이시영 선생님이다. 그리고 광복을 맞이한 선생님은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님과 국내로 들어오기 전에 찍은 사진이 있다. 

 

Q. 이 사진 속 이시영 선생님은 어느분일까요? 
정답보기 

 

 

광복을 해서 조국으로 돌아가지만 형제들을 다 잃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이시영 선생님의 마음이 어땠을지를 알수 있는 사진입니다. 형제들의 넋을 앉고 조국으로 들어 왔을 거예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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