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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국보83호 & 일본 국보1호 , 국보 119호

by 365 ^^ 2021.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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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국보 83호)

   

전 세계에 극찬을 받은 조형미의 극치 반가사유상이다. 출가 전 석가모니 싯다르타 태자의 사유하는 모습을 표현한 불상이다. 

 

반가한 자세로 사유한다고 하여 반가사유상이다.

 

어느 시대 언제 어디서 제작된 것인지 불확실한 작품으로 제작 시기를 삼국 시대 7세기 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처님의 후광을 형상화한 광배가 붙어 있었던 자국

 

 

 

※ 생각하는 사람의 대표작은 서양의 로뎅인데  반가 사유상의 높이는 93.5cm 둘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로뎅은 49cm로 반가사유상이 더 크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단테가 쓴 <신곡>이라는 작품 속  단테는 옛날 고대의 신과 함께 9개의 지옥을 여행하는데  단테가 들어가는 지옥의 문을 조각했던 로댕의 지옥의 문 위에 앉아서 생각하는 사람을 나중에 따로 떼어 186cm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조각을 한 것이 오늘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으로 향하는 인간을 보며 고뇌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여 그린 작품이다.

 

 

 

반가 사유상 미소의 의미는? 

 

어느날 싯다르타가 앉아 있는 앞에서 쟁기로 밭을 갈고 있던 한 농부가 있었는데 거기서 벌레 한 마리가 나오더니 쟁기를 피해 살아났지만 개구리에게 잡아먹혔다. 벌레를 잡아먹은 개구리는 뱀에게 잡아먹히고 이렇게 개구리를 잡아먹은 뱀은 매가 와서 잡아가는 것을 보고 싯다르타 태자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모든 만물이 인연에 따라 윤회하는 것이라 눈앞의 상황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항상 겸손해야 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조각 한 작품이다.  

 

우리가 항상 겸손해야 함을 알게 된 순간의 깨달음의 미소이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과 일본의 국보 1호 고류지 목조 반가사유상(=고류사 목조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우리나라 반가사유상의 영향을 받은 근거

 

▶우리나라에 경상도 지역에서 자생하는 적송으로 만들었다.

▶만드는 방식 또한 당시의 일본 불상들과 다른 방식으로 조립하지 않고 통으로 깎아서 제작한 스타일이다.

▶ 우리나라 자생 나무로 제작된 것이라 우리가 선물했다는 견해도 있다. 

 

각국의 불상이 조금씩 다르게 생겼으나 일본과 한국의 불상은 너무 흡사

 

해외에서 전시되었던 국보83호 반가사유상 문화 교류전 인 2013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될 때  해외 전시를 위해 보험을 들었는데 얼마였을까? 미국 달러로 5000만 달러 약 500억 가치다. 

 

 

 

 

 

그렇다면 

 최고의 보험금이 책정된 우리 문화재는? 

 

 

최고가의 보험금 책정 문화재로  경남 창원시에 있는 진해우체국으로 1981년 사적 291호호 지정된 곳이다. 진해 우체국의 보험금은 534억 원으로 영화 <클래식>에서도 등장한 러시아풍의 근대 건축양식으로 목조 건축물 전체가 보험 대상이기 때문에 높은 보험가가 책정된 것이다. 

 

 

 

금동 연가7연명 여래입상

(국보 119호)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이 돋보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

 

높이 16.2cm의 금동 연가 7 연명 여래입상은 금동으로 만든 석가여래가 서있다. 는 뜻의 여래 입상으로 연가 7년 기미년(539년)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불상으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희귀한 기년명 불상이다.

 

광배 뒷변에 새겨진 제작년도

 

금동 연가7연명 여래입상 도난사건  

 

불상이 발견된 후 처음엔 덕수궁 미술관에 전시가 되고 있었는데 1967년 10월 24일 오전 10시 30분쯤 사라져 버린 국보 119호 금동 연가 7 연명 여래 입상은 순찰 중이던 경비원에 의해 도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내부에는 120여 명의 관람객이 있었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범인이 남긴 쪽지에는 오늘 12시까지 돌려놓을 테니 신고하지 말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비원의 신고와 동시에 제일 먼저 덕수궁 미술관을 폐쇄하는 한편 대한문 폐쇄까지 폐쇄해 덕수궁내 관광객 모두 수색했고 국보의 해외 밀 반출을 전부 차단하기 위해 모든 공항과 항만을 폐쇄하고 철저한 검문검색을 실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경찰은 도난당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문화재 관리국 국장 집에 범인은 전화를 건다.  

 

30대 남성의 목소리였고 돌려 줄 것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 3시에 두 번째 전화가 오고 명동에 있는 유네스코 태궁 다방에 쪽지를 남겼다. 밤 11시 05분에 전화가 온다. 불상은 한강 철교 제3 교각  16번과 17번 받침대 사이 모래밭에 있다는 전화였다.

 

경찰도 없이 운전사를 깨워 부인과 함께 달려가 범인지 지정한 장소를 뒤지기 시작하고 20분 쯤 되었을 때 드디어 불상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여전히 범인을 찾지 못한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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