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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117

홍이포 대포 -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던 인조를 굴복시킨 무기.. 1636년 오랑캐라고 부르던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다. 병자호란이었다. 한양을 떠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 47일만에 청나라에 굴복하고 만다. 이때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군이 가진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홍이포 위력 17세기 홍이포라는 대포이다. 원래 서양에서 들어온 것을 명나라가 사용하다가 청나라가 뺏어왔다. 이 대포는 엄청난 폭음과 위력을 자랑한다. 이 대포로 조선의 성벽은 무너졌고 성벽을 넘어 성 깊은 곳까지 떨어진 포탄에 조선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홍이포의 무게는 수백 kg이상으로 홍이포의 위력은 대단했다. 최대사거리 무려 9km로 현대 무기 박격포 최대사거리가 3~6km인데 그것이 2배인 셈이다. 임진왜란때 사용했던 천자총통은 30근짜리 포탄을 사용하면 사정거리 약 1.4km 였다. 이 천.. 2023. 2. 18.
사르후 전투 (누르하치의 팔기군, 팔기제도) 396회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하려했던 이유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약해진 군사력을 염려하여 집권 초부터 무비에 집중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조선의 주 적은 여진족이었다. 여진족을 상대하기 위해 광해군은 화기도감(총포를 제작하기 위하여 설치했던 임시 관아)을 만들었다. 화기도감은 기존의 조총청을 개편하여 만든 기관으로 불랑기, 호준포 등의 화포 제작에 힘쓰게 된다. 또한 연병지남(광해군 4년 1612년에 판교가 편찬한 군사훈련에 필요한 지침을 기록한 것)이라는 병서를 편찬했었다. 임진왜란 참전 이후 국력이 쇠퇴하는 명나라였고 그 틈을 타서 압록강 북쪽의 여진족들이 1616년 후금을 건립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광해군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명나라가 임진왜란때 도움을 줬기 때문에 대신들의 재조지은(나라를 .. 2023. 2. 8.
청나라 만주족 , 만주어 이야기 / 명나라 멸망 이유 17c 중국은 명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제국 청나라가 들어선다. 명.청 교체기에 원인을 제공한 주요사건 중의 하나가 1952년 발발했던 임진왜란이다. 명.청의 흥망은 당시 국제적인 돈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을 쩐의 전쟁이라고 할만큼 돈의 역할이 중요했다. 청나라 만주족의 이미지는 오랑캐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과 뗄수 없는 관계이다. 만주족 계보 만주족의 계보는 말갈족-여진족-만주족으로 이어진다. 발해 또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으로 구성되어 말갈족이 바로 여진족의 전신이다. 여진족으로 동부 만주 일대에 거주한 통구스 계통의 집단이었고 12세기 초 고려시대때부터 성장한 여진족으로 여진~만주족 활동 지역은 과거 고구려가 지배하던 땅으로 고구려의 민족 구성원도 한반도& 북방의 기마 민족으로.. 2023. 1. 30.
효창공원 역사 김구선생의 묘는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177-18 효창운동장 옆 효창공원에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묘는 서울 현충원에 있다. 효창공원은 현충원보다 먼저 국립묘지가 될뻔한 공원이다. 백범 김구의 묘보다 먼저 이곳에 안치된 여러 사람이 있다.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일본군 대장을 처단한 윤봉길, 항일 무장투쟁 단체 흑색공포단 백정기는 중국 주재 일본공사 암살시도하다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일본 감옥에서 옥고로 숨졌다. 일본에 묻혀있던 이 세명의 독립운동가를 박열에게 수습하도록했고 이봉창과 백정기의 유해는 찾았고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어렵게 찾아 삼의사의 유해를 효창공원에 안치시켰다. ▶한인 애국단 이봉창 의사 의거 이야기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의거 효창묘->효창원 백범 김구와 삼의사를.. 2023.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