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7,38회 중]
출연자: 설민석
수원 화성
수원화성을 만든 이유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비극적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무덤도 제대로 조성이 되지 못했다. 이를 안까갑게 여긴 정조는 1762년 양주 배봉산 아래 조성했던 (서울시립대 자리) 아버지의 무덤을 1789년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수원화성 쪽으로 이전을 한다. 무덤 자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이주시켜 관아와 민가를 옮겨 새롭게 조성하고 신도시 수원화성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수원화성은 정조가 만든 최초의 신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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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은 성문, 각종 방어 시설을 갖춘 군사 요새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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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파손됐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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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대부분 복원 197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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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이 정문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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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은 본래 신도시로 만들기 전에는 가옥이 6채 있었다. 거의 황무지였던 이곳에 구읍에 살고 있던 민가 200여 호를 이주 비용으로 총 10만 냥을 쾌척 현재 가치 약 70억을 보상금으로 나눠주고 이주 시켰다. 게다가 10년 간 세금 면제와 나라에 갚아야 하는 환곡 이자를 3년 치 탕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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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담장 때문에 대규모 전란에는 방어 능력이 취약했기 때문에 인근 산성으로 대피 하는 것이 방어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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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읍성+산성의 성곽 제도는 전쟁 후에는 읍성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상당히 문제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정조는 읍성과 산성의 장점을 융합한 요새화 된 신도시 수원화성을 만든 것이다. 100M 마다 48개 소의 공격 방어 시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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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적을 감시하고 포를 쏘는 등 다양한 성벽 방어 시설을 체계적으로 배치한 수원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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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성문 바깥쪽에 반원형 외성을 쌓아 방어력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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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가까이 다가온 적을 끓는 물이나 기름을 부어 공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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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에 불이 났을 때 물을 부어 불을 끄는 소화전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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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읍성은 주로 관청이 북쪽에 있었다. 서울도 경복궁 앞 종로처럼 동서로 길을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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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수유정 아래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용머리 바위 이름을 따 용의 연못, 용연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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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 수류정은 감시가 용이한 위치의 군사 지휘소이자 휴식을 위한 정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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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역- 군대 갈 의무
- 요역- 국가 사업에 (무상으로) 노동력을 제공할 의무
공사기간을 5년으로 예상했으나 약 2년 반 만에 완성한다. 그 이유는 당대 최고의 과학기법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또한 공사 참여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했다. 일한만큼 돈을 지급했기 때문에 1794년 1월 공사 시작해서 1796년 9월 공사완료가되고 공사 전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가 남아 있고 활자본으로 여러 권을 찍어내어 다른 의궤에 비해 분량도 많은 10권 9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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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물건을 나을 때 사용하는 손수레의 일종으로 정약용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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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수 레의 바퀴보다 위에 짐 싣는 부분을 만들어 물건이 바퀴에 걸리지 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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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는 거중기로 정약용에 의해 발명되었다. 정조는 청나라에서 수입한 5000권 이상의 수많은 책 중 16세기 서양 기술 수많은 장치들의 그림과 그 원리가 적힌 <기기도설>에 큰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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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그 책을 정약용에게 건네주고 <기기도설>을 참고해서 만든 것이 바로 거중기이다. 거중기의 실제 활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실무에 쓰이는 기계의 중요한 점은 고장이 잘 나지 않고 단순해서 많이 쓰는 기계가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거중기의 경우 복잡한 구조의 장치로 좌우 이동이 어렵고 위 아래 이동만 가능해 무거운 것을 들어 올려 수레에 얹는 용도로만 사용됐을 거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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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가 투입되어 1대가 남았던 것으로 보아 실용적인 측면이 아쉽다.
사실 수원화성은 파손된 성곽을 새롭게 재건축한 것인데 원래 재건축된 문화유산은 유네스코 유산으로 배제가 되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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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수원화성이 지정된 이유는 수원화성 축조에 관련된 모든 정보가 기록된 <화성성역의궤>덕분이다.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정보를 기반으로 그 당시 그대로 재건축된 문화유산이라 판단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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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에 등재가 가능했고 <화성성역의궤> 야 말로 과학적인 기록으로 기계 설비부터 사람들의 임금까지 모든 것이 기록된 현장건축 기록물이자 과학 실험 노트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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