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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티니안섬 (일본 1억총옥쇄작전) 자살절벽 전쟁역사

by 365 ^^ 2020. 8. 5.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45회]

 

오늘의 탐사지: 사이판 티니안 섬(일본군 연료저장소-일본해군 항공사령부-자살절벽)

주제: 티니안 섬의 전쟁사 

 

 

 

티니안 섬 

사이판섬에서 남쪽으로 5km 경비행기로 10분 거리에 있는 티니안 섬

섬의 면적은 약 101㎢로 강원도 속초시(102㎢)와 비슷한 정도이다. 대중교통이 없고 소가 사람 수의 4배가 있는 곳으로 곳곳에 방목된 소가 약 12000마리다. 티니안 징용을 왔던 한인 중 전쟁이 끝나고 정착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티니안 주민의 40%가 한국계 혼혈 혈통이다. 

 

 

 

 

티니안 섬의 간략 역사

 
태평양 전쟁 당시 티니안 섬은 일본군에게 중요한 군사기지였다. 1930년대 후반 일본은 비행장, 해군 항공 사령부 통신 본부 등 군사 시설을 설치하고 대략 8500여 명의 일본군이 이곳에 주둔했다.
 
해군 항공 사령부 통신 본부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사이판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았으나 1944년 6월 15일 사이판 킬릴리 해변에 상륙한 미군은 1944년 7월9일 24일만에 사이판섬을 점령한다. 사이판 전투 후 한 달 뒤 티니안 정복에 나선 미군은 1944년 7월 24일 미국 병력이 티니안으로 상륙한다. 티니안 전투가 시작되던 날 쏟아지는 폭격 속에 일본군의 연료 창고들은 불타고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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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연료저장소>

미군은 일주일만에 티니안 섬을 점령하고 이곳에 주둔하던 8천여 명의 일본 병력들이 1944년 8월3일 전부 궤멸되면서 결국 티니안 전투에서도 처참하게 일본은 패배한다.

 
1945년 8월6일 티니안섬에서 히로시마로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3일뒤 나가사키에 2차 원자폭탄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다.
 
 
 
 
 
일본 해군 항공 사령부
이곳은 해군 경비대와 해군 항공대의 간부들이 사용하던 건물
 
지휘관들이 이곳에서 해군 부대를 지휘했던 것으로 추정

 

 
1937년 중일 전쟁을 기점으로 다음 해 1938년에 생긴 '육군특별지원병령'이 내려 지원자를 받다 1943년에는 '학도지원병' 제도->패망 1년전 1944년에는 징병제를 실시하며 약 19만 명의 한인청년들이 전선으로 동원되었다. 
 
이곳 티니안에 징용 온 한인들도 처음엔 노동자로 왔다가 폭격이 들이닥치고 활주로가 필요하니 군속으로 전환이 됐고 그들은 전쟁 중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각종 군사 시설의 건설에 투입되어 열악한 노동 환경 속 가혹한 착취를 당해야 했다. 
 
 
일본이 건설한 활주로 
원래 일본군이 건설했던 비행장으로 강제동원 된 한인노동자들의 손으로 건설된 이곳

 

1944년은 일본이 미드웨이 해전 패배 이후 사이판, 티니안섬까지 물러선 때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동원하여 지은 곳이 이 활주로다. 한인 노동자들은 폭격을 피해가면서 일해야 했던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이었다. 

 

 
오줌싸움
티니안 섬의 노동자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쳐가자 자신의 오줌을 숨겼다가 마셨다. 그런데 그 오줌마져도 누군가 훔쳐 마셨다는 이유로 다툼이 생기고 그 때문에 일본군 감시병에게 구타를 당하고 기본적인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티니안섬 강제 동원 노동자들의 비극이었다.
 

 

 
차로 이동해도 시간이 꽤 걸릴 정도로 상당한 길이의 활주로인데 전쟁 상황 중 공사 자재나 시멘트도 없어서 별다른 장비도 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맨손으로 산호를 부숴서 바닥을 깔아야 했던 강제 동원 노동자들이었다. 
1944년 8월1일 티니안섬을 공식 점령한 미국은 활주로를 확장한다. 
 
 티니안섬 속 활주로

 

 

 

미국이 비행장을 확장한 이유는?
 
미국의 목적: 일본 본토까지 약 2400KM 미국 폭격기가 뜨기 완벽한 위치였으므로 짧은 활주로를 더 길게 확장하고 1개-> 4개로 개수도 증설했다. 
 
 
티니안의 자살절벽

 

일본의 1억총옥쇄작전 

 

(=1억총옥쇄작전이란 일본의 1억 총인구가 모두 옥처럼 부숴져 죽을때까지 싸운다는 의미로 전쟁에서 명예롭게 죽자는 의미이다.  )

 

티니안 섬에 있는 자살절벽에서도 사이판 자살절벽에서 떨어저 죽은 일본인들이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전쟁의 막바지에 일본인과 한인들은 자연동굴에 숨어 있었다. 

 

 
몇 일씩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한인들은 미군이 동굴 앞까지 오자 두 손 들고 투항을  하고 나오는데

 

한인들 틈에 숨은 일본군이 옥쇄(옥처럼 부서져라)작전으로 미군에게 사격을 했고 이에 미군은 대응 사격을 하며 무고한 한인들만 희생 당했다. 그 와중에 동굴 안에서 독가스를 살포해 또 다시 한인들은 희생되었다.  

 

티니안 동굴 속 독가스 살포 모습 

 

평화기원 한국인 위령비

 

 
1977년 대구대학교 창설자 이영식 목사는 티니안 섬에서 휘발유 트럼통 3개를 발견했는데 그 속에 마구잡이로 섞여 있던 유골들이 있었고 그 위에 콘크리드 비석에는 한자로 '조선인지묘'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약 3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유골은 대략 5000여 구로 추정되었고 이를 너무 가슴아프게 여겨 1977년 3월 23일 한국정부의 허가를 얻어 위령비를 세우게 된다.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를 필두로 유해 봉환한 5000여구는 현지에서 다시 화장해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 장미묘에 안장했다.  

 

 

 

 

위령비 내용 

 

그날 무명으로 떨린 오천의 꽃떨기
백의의 아들 딸들이 여기 누워있다. 
일찍이 단군의 나라
백성으로 목숨 받은 이들은 
저 일본군의 무모한 차출에 끌려
어진 양처럼 이곳까지 와서
천추의 한을 남기고 죽어간
우리의 그 임들
사이판. 티니안의 하늘이 무너지고
섬이 꺼지는 굉음에 깔리고
군도에 찔리어 무참히 떼죽음 당한
우리의 젊은 형제요 꽃 같은 자매였다..... 
...
태평양섬의 푸른 파도여 이제는 정언하라 
그들의 이 떼죽음
그 통한의 의미가 무엇이었던가를
원컨대 재천의 신령이여
이들을 품에 안으시어 영생케 하시고
지나는 사람들은 이 작은 돌 앞에 멈추어 
원혼들 위해 잠시 명목(눈을감다)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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