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45회]
오늘의 탐사지: 사이판 티니안 섬(일본군 연료저장소-일본해군 항공사령부-자살절벽)
주제: 티니안 섬의 전쟁사
티니안 섬
섬의 면적은 약 101㎢로 강원도 속초시(102㎢)와 비슷한 정도이다. 대중교통이 없고 소가 사람 수의 4배가 있는 곳으로 곳곳에 방목된 소가 약 12000마리다. 티니안 징용을 왔던 한인 중 전쟁이 끝나고 정착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티니안 주민의 40%가 한국계 혼혈 혈통이다.
티니안 섬의 간략 역사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사이판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았으나 1944년 6월 15일 사이판 킬릴리 해변에 상륙한 미군은 1944년 7월9일 24일만에 사이판섬을 점령한다. 사이판 전투 후 한 달 뒤 티니안 정복에 나선 미군은 1944년 7월 24일 미국 병력이 티니안으로 상륙한다. 티니안 전투가 시작되던 날 쏟아지는 폭격 속에 일본군의 연료 창고들은 불타고 폭발했다
미군은 일주일만에 티니안 섬을 점령하고 이곳에 주둔하던 8천여 명의 일본 병력들이 1944년 8월3일 전부 궤멸되면서 결국 티니안 전투에서도 처참하게 일본은 패배한다.
일본 해군 항공 사령부
1944년은 일본이 미드웨이 해전 패배 이후 사이판, 티니안섬까지 물러선 때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동원하여 지은 곳이 이 활주로다. 한인 노동자들은 폭격을 피해가면서 일해야 했던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이었다.
티니안의 자살절벽
일본의 1억총옥쇄작전
(=1억총옥쇄작전이란 일본의 1억 총인구가 모두 옥처럼 부숴져 죽을때까지 싸운다는 의미로 전쟁에서 명예롭게 죽자는 의미이다. )
티니안 섬에 있는 자살절벽에서도 사이판 자살절벽에서 떨어저 죽은 일본인들이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전쟁의 막바지에 일본인과 한인들은 자연동굴에 숨어 있었다.
한인들 틈에 숨은 일본군이 옥쇄(옥처럼 부서져라)작전으로 미군에게 사격을 했고 이에 미군은 대응 사격을 하며 무고한 한인들만 희생 당했다. 그 와중에 동굴 안에서 독가스를 살포해 또 다시 한인들은 희생되었다.
평화기원 한국인 위령비
약 3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유골은 대략 5000여 구로 추정되었고 이를 너무 가슴아프게 여겨 1977년 3월 23일 한국정부의 허가를 얻어 위령비를 세우게 된다.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를 필두로 유해 봉환한 5000여구는 현지에서 다시 화장해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 장미묘에 안장했다.
위령비 내용
그날 무명으로 떨린 오천의 꽃떨기백의의 아들 딸들이 여기 누워있다.일찍이 단군의 나라백성으로 목숨 받은 이들은저 일본군의 무모한 차출에 끌려어진 양처럼 이곳까지 와서천추의 한을 남기고 죽어간우리의 그 임들사이판. 티니안의 하늘이 무너지고섬이 꺼지는 굉음에 깔리고군도에 찔리어 무참히 떼죽음 당한우리의 젊은 형제요 꽃 같은 자매였다........태평양섬의 푸른 파도여 이제는 정언하라그들의 이 떼죽음그 통한의 의미가 무엇이었던가를원컨대 재천의 신령이여이들을 품에 안으시어 영생케 하시고지나는 사람들은 이 작은 돌 앞에 멈추어원혼들 위해 잠시 명목(눈을감다)하시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