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조명연합군1 사르후 전투 (누르하치의 팔기군, 팔기제도) 396회 광해군이 중립외교를 하려했던 이유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약해진 군사력을 염려하여 집권 초부터 무비에 집중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조선의 주 적은 여진족이었다. 여진족을 상대하기 위해 광해군은 화기도감(총포를 제작하기 위하여 설치했던 임시 관아)을 만들었다. 화기도감은 기존의 조총청을 개편하여 만든 기관으로 불랑기, 호준포 등의 화포 제작에 힘쓰게 된다. 또한 연병지남(광해군 4년 1612년에 판교가 편찬한 군사훈련에 필요한 지침을 기록한 것)이라는 병서를 편찬했었다. 임진왜란 참전 이후 국력이 쇠퇴하는 명나라였고 그 틈을 타서 압록강 북쪽의 여진족들이 1616년 후금을 건립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광해군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명나라가 임진왜란때 도움을 줬기 때문에 대신들의 재조지은(나라를 .. 2023. 2. 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