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후계자 선정 과정
칭기즈칸이 죽기 8년 전 칭기즈칸이 건강할때 당시로서는 금기였던 후계자 논의를 하게 된다. 그 당시 칭기즈칸이 가장 사랑했던 예수이 카툰(타타르부 출신의 칭기즈칸의 세 번째 부인)이 (정실의 아들만이 왕위 계승 가능) 부담없이 후계자 결정을 꺼냈다.
이때 장남 조치와 차남 차가타이가 싸움이 일어나고 이 싸움은 몽골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거대한 싸움의 도화선이 된다. 조치와 차가타이의 싸움은 내분,내전으로 이어지고 형제의 갈등은 칭기즈칸 손자대까지 이어진다.
두 형제의 싸움끝에 갑자기 셋째 우구데이로 하자는 말이 나오고 이에 차가타이+우구데이, 조치+툴루이 네 아들이 두 세력으로 갈라지는 시발점이 된다.
우구데이 금나라 정벌(1232년)
칭기즈칸의 마지막 유언은 금나라 정복이었다. 칭기즈칸이 살아있을때 이미 금을 정복했으나 넓은 금나라를 모두 정복한 것은 아니였고 금나라가 칭기즈칸이 살아있을때 금나라가 쳐들어온 적도 있었기 때문에 우구데이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숙적 금을 정벌하기 위해 떠났다.
칭기즈칸의 금나라 정벌때는 황금, 비단, 인질, 말 등에 대한 제공을 약속 받고 금나라에서 철수를 했지만 몽골 입장은 항복이었고 금나라 입장에서는 화친, 강화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몽골이 철수 하자마자 금나라는 수도를 황하 이남(개봉)으로 옮겨버린다.
그래서 다시 금나라를 공격해야 하는데 호레즘에서 몽골상인이 죽어 금나라가 아닌 호레즘을 정벌했고 돌아오는 길에 서하를 공격하다가 결국 서하 전쟁에서 사망한 칭기즈칸이었다. 칭기즈칸때 금나라 정벌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우구데이 금나라를 치기 위해 남송과 연합해 북,서,남 세 방향에서 협공을 했고 1232년 2월 삼봉산 전투에서 금나라 군 15만명이 전멸한다. 그리고 금의 마지막 황제 애종은 자결하면서 금나라는 멸망한다.
칸-> '카안' 황제 호칭 변경
칭기즈칸시대 황제 호칭은 '칸' 인데 우구데이 시대부터는 황제의 호칭이 '카안' 으로 변경된다.
칭기즈칸의 칸은 유목민의 군주를 뜻하는 '칸' 으로 농경민을 아우르는 보편 군주를 의미한다.
우구데이 '카안' 은 유일무이 칸 중의 칸 을 의미한다.
우구데이의 몽골시대는 몽골의 성격이 달라져 칭기즈칸의 국가는 약탈하는 유목국가에서 정주지역을 관리 통치하는 국가로 세계제국으로의 발전을 한 것이다. 또한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기 시작한 것도 우구데이 카안때부터였다.
[다음이야기] 몽골 우구데이 -구육칸 - 몽케칸 유럽 정복
징기스칸은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벌거벗은 세계사 버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