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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이성계 위화도 회군과 조선 건국 과정 [최영의 죽음, 이방원 정몽주 제거]

by 365 ^^ 2020. 9. 9.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53,54회 중]

 

 

이성계의 등장 

 

공민왕이 측근의 배신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하고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공민왕의 아들 우왕은 불과 10살이었다. 그래서 어린 왕을 대신해 다시 실권을 잡은 권문 세족 친원파의 복귀가 이루어진다. 이에 정도전은 혁명을 결심하게 되고 그 당시 신흥 무인 세력의 실세 이성계에게 손을 내민다. 

 

 
명나라의 성장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주도 하에 요동 반도 부근을 거점으로 원나라 땅을 점령한다.

 

 

이렇게 명나라가 세워지고 고려 땅에 명나라 군사 기구인 철령위를 설치하려 했다.

원나라에게 공민왕이 수복했던 땅을 다시 갖겠다고 한 것이다. 

 
 
이성계의 요동정벌 반대 
 
이에 최영이 명나라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래서 명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요동 정벌이 추진하려 하지만

이때 이성계가 4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를 한다. 

 

 
이성계의 4불가론
 

 

 

 

그러나 우왕이 최고 실권자 최영의 편을 들어주며 요동정벌 강행한다. 최영의 총 지휘 아래 이성계, 조민수 장군과 함께 요동으로 출발하려 했으나 우왕이 암살의 위험을 호소해 최영은 할 수 없이 왕 곁을 지키기로 한다. 그리고 대신 이성계를 요동으로 보낸다. 
 
 
위화도 회군
 
그래서 5만 고려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향한 이성계와 조민수 장군은 압록강에 도착 압록강을 건너야 요동을 갈 수 있었는데

 

고려와 요동의 경계인 압록강에 섬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위화도이다. 

 

이렇게 위화도까지 무사히 온 요동정벌군이었으나 장마로 인한 압록강에 물이 불어나 진군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최영에게 개경으로 돌아오라는 명을 내려 달라는 상소를 보내지만 최영은 회군 요청을 묵살한다. 이에 이성계는 명령을 불복하고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회군한다. 이것이 위화도 회군이다. 

 

 
 
 
최영의 죽음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이성계와 조민수는 최영의 개경 전투에서 승리한다. 

 

최영은 처형을 당하고 우왕은 폐위된다. 

 

 

최영이 처형당하기 전 

이성계와 나눴던 마지막 이야기 

 

 

이렇게 이성계와 조민수의 세상이 온다. 그러나 왕위 계승을 놓고 또 의견이 갈린다. 
 
조민수는 모든 신진 사대부의 정신적 지주 이색과 함께 당시 9살인 우왕의 아들 창왕을 옹립하려 하면서 회군 후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정치 싸움으로 신진 세력들은 분열되기 시작한다. 
 
이색은 정도전,정몽주의 스승이자 유학자이다. 조민주가 이색을 설득해 고려 33대 왕 창왕을 옹립한다. 

정도전, 이성계는 군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이색 조민수에게는 왕이 있었다. 이들의 대립 관계가 팽팽하게 맞서게 되자 정도전은 민심을 잡기 위해 노력하다.  

 

 

정도전 이성계의 

민심잡기 프로젝트

 

사전의 폐단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헐값에 빼앗아 농민을 노비로 삼고 토지를 넓혀가는 개인 토지 사전을 확대하는 일이 자행 되면서 고려가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게 되고 공전의 세금보다 7~8배 정도의 엄청난 세금으로 고통 받았던 백성들을 위해 사헌부 대사헌 조준을 통해 토지 개혁에 대한 새로운 대안책을 제시하는 상소를 올려 토지 제도를 개혁,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두 번째로 정도전과 이성계는 폐가 입진이라고 하여 가짜 왕을 폐하고 진짜 왕을 올리자는 것이었다. 사실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고 신돈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그의 아들 창왕 또한 정통성의 문제로 폐위 시키는데 성공한다.

 

 
그와 동시에 창왕을 옹립했던 이색도 귀양을 보낸다. 창왕 폐위 후 이성계의 인척 왕요를 왕으로 추대 한다. 그가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다. 
 

 

정도전, 이성계는 공양왕 즉위와 함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윤이 이초 사건
 
공양왕 즉위 후  세력이 강해진 이성계와 정도전 세력에 대항하는 반 이성계 파 중에 윤이와 이초가 점점 실권을 장악해가는 이성계를 막기 위해 명나라로 가서 이성계가 인척을 왕위에 올리고 명나라를 칠 것이라고 전한 사건이다. 이것을 이성계가 알게 되고 관련된 모든 세력에 대한 피의 숙청이 시작된다. 결국 이성계 일파가 반대파 세력을 제거하는 기회로 삼게 된다. 이에 정몽주는 정도전과 이성계 세력과 등을 돌린다. 
 
이성계의 낙마 사고

 

윤이. 이초 사건 이후 국면이 전환되며 정몽주를 중심으로 다시 보수파가 정권을 잡게 되고 정치적 대립 끝에 정도전은 유배를 가게 되고 이성계는 사냥 중 낙마로 중태에 빠지게 된다. 

 

이 상황에 이성계의 많은 자식 중 다섯 번째 아들 이방원은 (훗날 태종) 이성계를 개경으로 데려와 정몽주 파의 위협을 막으려 아버지를 급하게 가마에 태워 개경으로 귀환한다. 이렇게 정몽주가 주춤하는 사이에 개경에 복귀한 이성계와 이방원의 빠른 판단으로 이성계 세력이 살아났다. 
 
 
 
이방원의 정몽주 제거
 
그 후 이방원은 이성계에게 정몽주를 제거하겠다고 알리자 이성계는 극대노하며 반대를 한다. 그러나 이방원의 생각은 달랐다. 정몽주를 죽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몽주를 죽일 계획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이방원은 1392년 4월 4일 (음력)에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한다. 

 

 

 

정몽주의 죽음 소식을 들은 
이성계의 반응 
 
이방원은 정몽주의 죽음을 이성계에게 알리고 이 소식을 들은 이성계는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 심정은 사약을 먹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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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이방원은 역사 속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유배 갔던 정도전은 돌아오게 되고 정몽주와 함께 했던 세력들은 귀양을 가는 등 숙청을 당한다. 
 
정몽주가 죽고 3개월 뒤 1392년 7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자신을 지켜줄 사람들이 없는 걸 알고 이성계를 찾아 동맹을 제안한다. 그와 동시에 정도전을 비롯한 이성계의 측근들은 죽은 공민왕의 네 번째 부인이었던 정비 안씨 왕대비를 찾아가 공양왕의 폐위 교지 작성을 요청한다. 이름 뿐인 왕대비로선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고 그렇게 고려 최후의 왕인 공양왕은 쫓겨나게 되고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는 47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4일 동안 나라에 왕이 없는 상태가 된다. 당시 이성계에게 내려진 직책인 감록국사는 원래 없는 직책이었는데 나랏일 전체를 총괄한다는 듯의 감록국사로 이성계만을 위한 관직이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에 1392년 7월 16일에 정도전, 조준 등의 대신들은 옥새를 받아들고 이성계의 집으로 향한다. 그것을 온 개성의 고려 백성이 지켜보게 된다. 
 
대신들은 이성계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요청하지만 나오질 않고 거듭된 대신들의 요청에 못 이기는 척 나와서 옥새를 받고 결국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우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조선 건국이 이루어 지고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은 이방원이 된다. 
 

 

 

 

이성계 이야기 2부 끝 

 

 

 

▼고려의 멸망 조선 건국 과정 관련 내용

 [선을 넘는 녀석들 53회, 54회 내용]

 

☞정도전 이야기 1부

 

☞정몽주 최후와 선죽교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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