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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2.8 독립선언 의의와 주역들 (최팔용,송계백)

by 짱신나^^ 2021.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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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독립 선언이 3.1운동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 중의 하나인데 1910년대 우리는 대학이 없었던 시절이다. 많은 학생들이 일본으로 유학 왔다.


1914~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처리를 위해 모인 승전국들의 파리 강화 회의에서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제국주의 때문이다 그래서 약소 국가가 스스로 결정할수 있게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를 선언하고 이에 학생들은 외교를 통한 독립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우리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생각하게 된다.

 

 

 

 

 

 

당시 일본 유학생이던 춘원 이광수가 초안을 쓰고 장소는 일본 도쿄 YMCA 회관에서 600여 명이 모여 2월 8일 독립 선언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일본 각계와 각국 공사관에 송부한다. 

 

조선청년독립단

당시 주동자는 유학생 최팔용이었다.

 

2.8 독립선언의 주동자 최팔용 

최팔용은 조국에 이들의 계획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때 나타난 사람이 송계백이었다. 검문을 피해 2.8독립 선언서 초안을 전달하기 위해 모자 안감을 뜯고 그 안에 선언서를 넣어서 국내로 밀 반입에 성공한다. 국내 민족 운동가들에게 독립선언서가 전달되고 송계백 학생은 2.8 독립선언서 초안을 전달한 후 일본으로 돌아온다. 

 

2.8독립 선언서 초안을 전달한 송계백

1919년 2월 8일 YMCA회관에서 2.8 독립선언을 한다. 

 

2.8 독립선언 전문

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000만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됨을 선언하노라. .......

한일합방이 한국민의 뜻에 반하는 만큼 일본은 한국을 독립시킬것 이에 응하지 않을 때는 우리 민족은 생존을 위해 자유행동을 취해 독립을 달성할 것이다. 

2.8 독립선언서 내용 일부

 

 

그러나 대회장을 감시하던 일본 경찰이 학생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60여 명의 학생이 체포되고 8명이 기소되었다. 

 

 재일본도쿄조선 YMCA 에서 조선인 유학생 수백 명이 함께한 2.8 독립선언
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2월 12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서 히비야 공원에서 유학생 150여 명이 만세 시위를 했다. 

 

2.8 독립선언 의의

2.8 독립선언은 일제의 식민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민족의 독립 열망을 일깨우고 확산시켜 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극이 되었고 독립선언서로서 휼륭한 기조로 독립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여 국내 3.1운동을 일으키는 직접적 영향을 주고 대한 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된다. 2.8 독립 선언과 3.1 운동 뿐만 아니라 광주학생 항일운동, 4.19 운동 등등 역사의 변곡점에는 항상 학생들이 있었다. 

 

 

2.8 독립선언의 장소

희비야 공원

 

일본 유학생은 히비야 공원에서 세 차례 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히비야 공원에서 2.8 독립선언을 낭독한 후 만세운동을 벌였던 장소가 이곳 히비야 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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