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창시자 최홍희는 누구?
육군 장성 출신 무술가 최홍희는 국군 장병들에게 태권도 훈련을 처음 실시했고 대한민국 최초로 태권도 부대를 창설했다. 또한 국제태권도연맹의 창시자이자 태권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최홍희는 이후 북한에서 태권도를 전파하게 된다.
태권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최홍희는 1918년 북한 함경북도 출신으로 20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 그리고 일본의 전통 무술을 보고 한국도 고유의 무도를 만들어 보자고 고민하다가 6.25 전쟁 이후 제주도 제29보병사단 초대 사단장으로 임명된다.
자신이 개발한 무술을 군인들에게 가르쳐봐야겠다고 생각하고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한 군 행사 중 대통령 앞에서 당수 시범을 선보인다. 이를 본 이승만 대통령이 전 군데에 보급을 지시하고 이로써 태권도는 대중화 되었다.
태권도 무술교본 초판 내용
최홍희는 1959년 태권도 무술교본 초판을 발행한다. 당시는 사진을 넣는 것이 귀하던 시절인데도 군시절부터 최홍희의 생애를 담은 사진들과 태권도의 기본 정권 자세부터 공격방법까지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ITF, WTF 태권도 연맹 창설 배경
국제 태권도 연맹 ITF 창설
3.15 부정선거로 인해 이승만 정권-> 박정희 5.16 쿠데타가 일어난다. 당시 육군 소장이었던 최홍희는 박정희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고 당시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박정희가 주류가 되면서 불만이 쌓였다. 당시 박정희 중심의 젊은 군인들은 군대 내부의 부정부패의 온상이라고 생각한 군 선임들을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특히 북한 출신 선임들이 표적이었다.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알래스카 토벌작전(= 가장추운 지역 함경도 출신 군부 세력을 지칭하는 것)을 실시 이 과정 속에서 이북 출신 군 장성들이 숙청을 당한다. 그리고 최홍희도 또한 예편된다. 그래서 최홍희는 말레이시아 대사로 파견이 되었다. 그때 최홍희는 계속 타국에서도 태권도 연구에 매진하며서 1966년에 돌아와 국제태권도 연명 ITF를 창설한다.
초기 가입국은 한국, 미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서독, 터키, 이탈리아, 아랍공화국등 9개국으로 시작해 1년 만에 40개국이 된다.
WTF 창설-> 최홍희의 북한행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이 자신의 세력을 ITF로 보내면서 최홍희는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박정희 정권에 견고해지자 최홍희는 캐나다 망명을 해버린다. 이에 박정희는 아들을 인질삼아 귀국을 권유한다. 그러나 최홍희는 이를 거절하고 이에 박정희는 최홍희가 만든 itf-> WTF로 변경하고 WTF 총재는 같은 군 출신의 김운용으로 변경한다.
남북으로 갈라진 태권도 연맹
이에 최홍희는 정통 태권도를 전파하기 위해 북한으로 향할 결심을 한다. 당시 김정일은 태권도에 관심이 있으니 시범단을 조직해 오라고 하고 이에 최홍희는 15명의 태권도 사범과 함께 방북한다.
1987년 5월 그리스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 북한의 최홍희가 이끄는 태권도 선수들이 첫 참가를 하고 여기서 금메달 9개,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를 따고 종합순위 1위를 한다. 이때 대한민국은 경기에 불참을 했다. 이때부터 한국의 태권도는 세계 태권도 연맹으로 최홍희의 IFT 국제 태권도 연맹은 북한 주도 연맹으로 갈라졌다.
김정일은 태권도 종주국은 북한임을 주장하며 세계 제일의 태권도 전당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북한은 북 태권도의 정통성을 홍보하기 위해 국제 및 북한 내 태권도 경기를 진행했다. 김일성 생일날 최홍희가 집필한 태권도 백과사전을 소개했고 자신의 태권도가 널리 알려져 기뻐한 최홍희였다.
최홍희 사망
그러나 최홍희는 정통성 있는 태권도의 전파를 위해 노력했는데 태권도를 흡수한 북한은 최홍희를 쫓아낸다. 최홍희는 83세에 위암 진단을 받고 평양에서 수술을 받고 수술 이후에도 악화된 건강상태로 태권도 세미나를 위해 미국까지 갔고 2002년 6월 15일 사망한다.
현재 남북 태권도
현재 태권도는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되었으나 현재까지 남북 교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2000년 평양에서 열린 6.15 남북 공동선언이후 본격적으로 남북 태권도가 교류를 언급 2002년 9월 첫 태권도 교류를 시작으로 201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권도 합동 공연까지 했고 현재도 꾸준히 남북 태권도 교류는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서로 견제하고 있는 남북 태권도이다.
[출처 이만갑 528회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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