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숨겨진 '미남불'의 정체, 왜 거기 있을까?
청와대 산책로 한편, 수풀 속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 단정한 불상 하나. 그냥 보기엔 평범한 돌불상이지만, 이 불상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977호로 지정된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한국에서 가장 잘생긴 불상"이라며 ‘미남불’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왜 ‘경주 불상’이 서울 한복판 청와대에 와 있을까?
이 불상에는 일제강점기, 대통령의 한마디, 문화재 반환 논쟁까지 얽힌 복잡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 불상의 정체와 예술적 가치
📌 통일신라의 미학, ‘미남불’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불상이다.
높이 108cm, 어깨너비 54.5cm, 무릎 너비 86cm로 사람 크기와 비슷하며, 풍만하고 온화한 얼굴, 올라간 눈꼬리 덕분에 ‘미남불’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당당한 비례와 균형미를 갖춘 이 불상은 흔히 볼 수 있는 팔각형 대좌(불상이 앉는 받침) 대신 **사각형 연화대좌(Square Lotus Pedestal)**를 갖춰, 조형적 독창성이 뛰어나다.
불상의 자세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偏袒右肩), 오른손은 땅을 짚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미남불이라는 별칭도 조선 총독부 관보인 매일신보에 실렸던 것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왜 청와대에 있는가?
📌 1913년, 일제의 강탈과 불상의 이동
이 불상은 원래 경주 지역, 특히 남산이나 도지동 이거사(移車寺)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13년, 경주금융조합 이사였던 일본인 고다이라 료조가 이를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헌납하며, 서울 남산 총독 관저(현재의 서울타워 부근)로 옮겨졌다.
총독이 되면서 데라우치는 경주의 석굴암 본존불과 석굴을 해체해서 서울로 옮기라고 명했다. 그러나 석굴암 본존불은 너무 커서 이것은 불가능했다. 이에 석불암과 비슷하게 생긴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다이라 료조가 상납을 했던 것이다.
📌 1939년 경복궁 청와대 자리로 이전
이후 1939년, 경복궁에 총독 관저가 신축되면서 이 불상은 현재 청와대 자리에 옮겨졌고, 일제는 이곳을 ‘조선통치의 상징 공간’으로 활용했다. 해방 이후에도 불상은 그 자리를 지켰다.
⚠️ 1990년대 대형 참사와 ‘불상 괴담’의 발생
📌 김영삼 대통령(제14대, 재임 1993~1998) 취임 이후, 한국 사회에는 연달아 대형 참사가 발생하였다.
- 1993년 3월 28일: 부산 구포역 열차 전복 사고, 76명 사망, 198명 부상
- 1993년 7월 26일: 대한항공 803편 추락, 75명 사망
- 1993년 10월 10일: 서해 페리호 침몰, 292명 사망
-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32명 사망
-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502명 사망, 937명 부상
이 시기의 비극은 "국가 재난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집약되어 있었고, 국민들은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
👻 ‘불상 저주 괴담’의 배경과 확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독실한 장로교 신자였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불상에 대해 거리감을 두며, 이를 청와대 내 다른 위치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불상의 자리가 바뀐 것이 **“불상의 노여움을 사서 국가적 참사가 발생했다”**는 괴담으로 퍼졌고, 이를 진화하려는 정부가 불상을 2회에 걸쳐 언론에 공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실제로 불상의 위치 변경이 있었는지는 정부 공식 기록에서 명확히 확인되진 않으나, 1990년대 중반 해당 불상이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사실이다.
📌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
처음 문화재로 공식 지정된 것은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였다.
🌟 보물 지정의 전환점, 문재인 대통령
📌 2017년, 산책길에서 시작된 보물 재지정
청와대 관저 뒤편을 산책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이 불상의 역사와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보물 지정 검토를 지시했다.
그의 요청에 따라 문화재청과 전문가들은 6차례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 2018년 4월 12일, 보물 제1977호로 지정
결국 이 불상은 2018년 4월 12일, 청와대 내부 첫 국가지정문화재로 ‘보물’ 지위를 얻게 된다.
🔥 현재 상황과 문화재 반환 논쟁
📌 2022년 5월 10일, 일반 공개 시작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가 74년 만에 일반에 개방되면서, 이 불상도 대중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관람객들은 관저 뒤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이 불상과 함께 ‘오운정’ 정자를 볼 수 있다.
📌 경주로의 반환 논의
일부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이 불상은 원래 경주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문화재청은 불상의 재질이 경주 암석과 유사하다고 밝혔지만, 정확히 어느 절에서 유래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 청와대 내 보호각 조성 및 복원
현재 이 불상은 청와대 녹지원 내 보호각에 보존 중이다. 문화재청은 백호·좌대 복원과 함께 지속적인 보존·관리를 계획하고 있다.
🎭 흥미로운 이야기 – “역사 속 청와대의 숨은 주민”
문재인 대통령은 이 불상에 대해 “청와대의 비밀스러운 보석”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이 불상 앞에서 소원을 빌었다는 전설 아닌 전설도 있다.
한 청와대 경호원이 “불상 앞을 매일 지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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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중에게 전면 개방된 청와대 뒤로 높이 342m 의 북악산이 위치해 있다. 사람의 얼굴을 닮아 면악 또는 백악산이라고 불린다. 큰 바위 두개가 용의 눈으로 옛날부터 전해지기로 청와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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