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임금의 하루는 일정한 규율과 유교적 예법에 따라 매우 체계적이고 바쁘게 운영되었다. 단순한 통치자를 넘어 국정 운영자, 유학자, 제례 주관자, 가족의 중심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임금의 일상은 일반적으로 아침, 낮, 저녁, 밤의 네 단계로 나뉘며, 각 단계마다 정해진 활동이 있었다.
📘 시간대별 임금의 하루
🌅 아침 (새벽 5시 ~ 오전 11시)
- 5시경 기상: 임금은 새벽 5시에 기상하였다. 곧바로 대비, 대왕대비 등 왕실 어른들께 문안 인사를 올렸다.
- 6시 초조반(初早飯): 죽 등 가벼운 간식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였다.
- 7시~9시 조강(朝講): 신하들과 함께 유교 경전, 정치 철학을 공부하고 토론하였다.
- 9시 조수라(朝水羅): 정식 아침 식사를 하였으며, 이후부터 **상참(上參)**이 시작되었다. 문무백관이 모두 모여 국정 보고를 하고 임금은 결정을 내렸다.
- 10시~11시 : 신하들에게 현안보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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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 (오전 11시 ~ 오후 5시)
- 점심 간식(낮것상 11-1): 왕은 보통 하루 두 끼만 먹었으며, 점심은 국수, 만두 등 간단한 음식이었다. 밥먹고 휴식.
- 주강(晝講 1-3시): 낮 공부를 통해 다시 신하들과 학문적 논의를 진행하였다.
- 참 (3-4시) : 간단한 간식
- 업무 처리 (4-5시): 지방관 접견, 인사 발령자 알현, 민원 보고 등을 처리하였다.
🌇 저녁 (오후 5시 ~ 8시)
- 5-6시경: 궁궐의 야간 숙직자와 군사 명단을 확인하고, 야간 암호를 정하였다.
- 석수라(夕水羅 6-7시): 정식 저녁 식사를 하였다.
- 석강(夕講7-8시): 저녁 공부 시간으로, 경전 탐독이나 경연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 8시경 문안: 다시 한 번 왕실 어른들께 저녁 문안을 올렸다.
🌙 밤 (오후 9시 ~ 밤 11시)
- 야참(9-10시): 냉면 등 간식을 먹는 경우도 있었다. 고종은 냉면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 상소문(petitions) 열람 및 독서(10~11시): 백성의 상소문을 읽거나 유학 서적을 읽으며 하루를 정리하였다.
- 11시경 취침: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전에서 휴식을 취하였다.6시간 취침이나 왕은 무조건 야근을 할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대부부분 1~2시경 잠이 들어 조선시대 왕들은 항상 수면부족에 시달렸다고 한다.
📌 기타 특징
- 임금의 하루는 ‘만기(萬機)’, 즉 수만 가지 국정 업무를 처리하는 책임감의 연속이었다.
- 모든 일정은 철저히 기록되었으며, 사관이 옆에서 왕의 언행을 빠짐없이 실록에 기록하였다.
- 휴식은 거의 없었고, 명절이나 관료 사망 등의 특수한 상황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 조선의 성군들은 하루 2~3회의 경연과 강독을 자발적으로 시행하며 학문과 국정의 모범을 보여야 했다.
✅ 요약표 – 조선 임금의 하루 일과
조선 임금의 하루는 결코 여유롭지 않았다. 국가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 그는 학문으로 스스로를 다듬고, 정무로 나라를 이끌며, 예법으로 왕실 질서를 유지해야 했다. 이것이 조선 시대 임금이 살아간 하루의 모습이다.
시간대 주요 활동
새벽 5시 | 기상, 문안 인사 |
오전 6시 | 초조반(죽 등 간단한 간식) |
오전 7~9시 | 조강 – 유교 경전 공부, 신하와 토론 |
오전 9시 | 아침 식사(조수라), 이후 상참(정무 회의) 시작 |
정오 | 낮것상(간단한 점심) |
오후 1~3시 | 주강, 신하 접견, 지방관 보고 |
오후 3~5시 | 숙직자 확인, 군사 명단 검토, 암호 설정 |
오후 5시 | 석수라(저녁 식사) |
오후 6~8시 | 석강(저녁 공부), 밀린 업무 |
오후 8시 | 왕실 어른 문안 |
오후 9시 | 야참(간식) |
밤 10~11시 | 독서, 상소문 열람 |
밤 11시 | 취침 |
📌 임금의 하루는 누구보다 규칙적이고 제한적이었다
- 왕은 하루 3번의 공식 업무(상참, 경연, 소참) 외에도, 상소문 열람, 의례 참석, 외부 사찰(視察) 등을 병행했다.
- 특히 성군(예: 세종, 정조 등)은 경연과 독서 시간에 많은 비중을 두어 학문과 정치를 함께 겸비하려 했다.
- 모든 일정은 **전각별 위치(편전, 침전, 정전 등)**에 따라 구분되어 움직였다.
🧠 임금별 특이점
- 세종은 하루 세 차례 경연을 열 정도로 학문을 중시하였고, 정조는 **‘일성록(日省錄)’**이라는 하루 일기를 직접 써가며 자기 반성을 기록했다.
- 영조는 과도한 경연과 상소 처리로 인해, 신하들이 **“왕의 건강을 해치지 마십시오”**라고 상소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 조선시대 왕들의 수명이 짧았던 이유
조선시대 임금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존재였지만, 놀랍게도 대부분 수명이 짧았다. 조선 27명의 국왕 중에서 **70세를 넘긴 왕은 단 두 명(영조와 고종)**뿐이며, 평균 수명은 약 47세 정도였다. 대부분의 왕은 수면부족과 업무에 시달렸고 면연력이 떨어지면서 등창등의 염증성 질환이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왕의 수명이 짧았던 이유는 단순히 시대적 한계만이 아니라, 정치, 환경, 심리, 의료 체계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였다. 조선왕이 이렇게 바쁜 일과를 살았던 이유는 조선이 왜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조선이 유교를 선택한 이유 : 충·효·의, 왜 하나로 묶였나? 정도전의 유교 정치학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왕을 '신이 내린 권위(divine right)'로 여겼다. 왕은 절대적 권력을 행사했고, 백성들은 왕의 신하이자 종속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동양의 유교(儒敎, Confucianism)를 기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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