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둘러싼 러·일 협정 배경: 러일전쟁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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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둘러싼 러·일 협정 배경: 러일전쟁으로 가는 길

by 365 ^^ 202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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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조선은 국제 정세의 중심에 놓인 약소국이었다. 청나라, 일본, 러시아, 서구 열강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다. 특히 1894년 청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했으나, 곧이어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이 본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을 두고 일본과 러시아는 여러 차례 외교적 협정을 맺었지만, 이는 단기적인 세력 조정에 불과했다. 결국 이러한 협정들은 조선의 자주성을 보장하지 못한 채, 러일전쟁(1904~1905년)의 도화선이 되었다.

 

 

1) 일본의 조선 장악 시도 (1894~1895년)

조선에서 일본과 청나라가 충돌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었다.

  • 전라도 지역에서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와 착취에 분노한 농민들이 반봉건·반외세를 기치로 봉기했다.
  • 조선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 그러나 일본은 **톈진조약(1885년)**을 근거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며 청나라와 대립했다.

이후 일본은 청나라를 조선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이는 1894년 **청일전쟁(淸日戰爭, 1894~1895년)**으로 이어졌다.

 

📌 청일전쟁의 결과

  • 일본의 압승: 일본은 육군과 해군에서 청나라를 압도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 소멸: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1895년 4월 17일): 일본은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대만, 펑후 열도, 랴오둥반도를 할양받았다.

하지만 일본이 획득한 랴오둥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조선과 만주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2) 삼국간섭과 러시아의 조선 개입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랴오둥반도를 차지하려 했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열강의 강한 반발을 받았다.

 

📌 삼국간섭(三國干涉, 1895년 4월 23일)

  • 러시아, 독일, 프랑스는 일본이 랴오둥반도를 차지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라며 반환을 요구했다.
  • 일본은 강대국들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1895년 11월, 랴오둥반도를 청나라에 반환했다.
  • 하지만 이후 러시아가 청나라와 협상하여 1898년 랴오둥반도의 여순(뤼순)과 다롄을 조차하면서 일본과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 러시아의 조선 개입 시작

  • 일본이 후퇴한 틈을 타, 러시아는 조선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 조선 내 친러 세력이 강화되었고, 러시아는 조선의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일본을 견제했다.
  • 러시아의 남하 정책(남진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조선과 만주는 러시아와 일본의 대리전이 벌어지는 지역이 되었다.
  •  

3) 을미사변과 러시아의 본격 개입 (1895~1896년)

조선에서의 러·일 대립이 절정으로 치닫게 된 사건이 바로 **을미사변(1895년 10월 8일)**이다.

 

📌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이유

  • 명성황후(민비)는 일본이 조선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와 손잡고 친러 정책을 펼쳤다.
  • 이에 일본은 조선의 왕실을 장악하기 위해 경복궁을 습격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 이 사건으로 조선 내 반일 감정이 극도로 고조되었고, 일본의 영향력이 일시적으로 약화되었다.

📌 아관파천(俄館播遷, 1896년 2월 11일)

  • 일본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1896년 2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 이를 계기로 러시아는 조선 내에서 더욱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 이후 조선 정부 내 친러 세력이 득세하며, 일본은 조선에서 크게 밀려나는 상황이 되었다.

4) 조선을 둘러싼 러시아-일본의 대립 본격화

📌 러시아의 조선 개입 심화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면서, 러시아는 조선의 정치·경제·군사적 개입을 본격화했다.
  • 러시아는 철도·광산·삼림 개발권을 요구하며 경제적 이권을 장악해 나갔다.
  • 일본은 이를 자신들의 조선 지배 계획을 방해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 일본의 대응: 외교적 협상 시도

  • 일본은 러시아와의 정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조선과 만주에서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협정을 맺으려 했다.
  • 이러한 배경에서 1896년 베베르-고무라 각서, 1896년 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 1898년 로젠-니시 협정 등의 조약이 체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협정들은 일시적인 세력 조정에 불과했다. 러시아는 점점 더 만주와 조선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고, 일본은 이에 맞서 전쟁을 준비하게 되었다. 결국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두 나라의 대립은 전면전으로 번지게 되었다.

 

결론: 러일전쟁으로 이어지는 길

19세기 말, 조선은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간주되었고, 일본과 러시아는 조선을 두고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다.

  • 청일전쟁(1894~1895년) 이후 일본이 조선에서 우위를 차지했지만, 삼국간섭으로 인해 러시아가 개입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 **을미사변(1895년)**을 통해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했지만, 오히려 조선 내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 아관파천(1896년) 이후 러시아가 조선 내에서 적극적인 내정 개입을 하면서, 일본과의 충돌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 결국 여러 차례의 협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은 외교적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았고, 1904년 러일전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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