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9회 리뷰 고전학 전문가 김헌 교수님]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는 그리스를 통합한 인물로 나폴레옹, 태양왕 루이 14세가 롤 모델로 삼을 만큼 많은 이의 영웅적 인물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는 그가 지은 <역사 총서>에 알렉산드로스를 호의적으로 집필했고 로마 역사학자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는 < 알렉산더 대왕의 역사 >에서 전쟁의 광인, 이중인격자였다고 언급했다. 이런 이중적인 성격을 상징하듯 알렉산더 대왕의 눈은 오드 아이였다는 기록도 있다.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의 정복지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아버지 필립포스 2세로 그는 그리스 통합의 기반을 닦아 놓고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가 21살 때 대부분의 그리스를 통합한다.
소아시아 터키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 팔레스티아 지역-> 이집트 대부분의 지역을 정복 후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를 정복-> 인도 일부를 정복하는데 약 13년의 시간이 걸렸다.
총거리를 환산하면 약 35,000KM로 지구 둘레 약 40,000KM에 근접한 둘레이다. 인류 역사에서 세계화의 첫 포문을 연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삼 대륙을 정복한 거의 유일한 고대 인물이다. 단순한 영토 확장의 정복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그리스 문화가 꽃피는 동서양 융합의 헬리니즘 문화 시대를 열었던 인물이다.
알렉산더(=알렉산드로) 부모
아버지 필립포스 2세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의 아버지이자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던 필립포스는 왕권 강화, 주변 도시를 복속시키면서 스파르타를 제외한 그리스 대다수 영토를 정복할 만큼 영토 확장에 힘썼다.
어머니 올림피아스
알렉사드로스의 어머니는 서쪽의 에피루스의 공주였다.
신화적으로 아버지 필립포스는 그리스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자손이었고 어머니는 올림피아스도 트로이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의 자손이다.
알렉산더 태몽
두 가문의 결합으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로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올림피아스 배를 때렸고 그 번개에서 나온 불길이 전 세계를 휘감았다가 사라진 태몽을 꾼 후 태어났다고 한다. 태몽 속 번개는 제우스를 상징 , 번개가 배를 때린 건 제우스의 기운으로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는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의미다.
올림피아스와 필립포스의 불화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힘들게 살아와서 인지 종교, 미신에 광적으로 빠져있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특히 뱀을 신성한 동물을 여겨 항상 실제로 뱀을 자신의 침실에 두고 지낼 만큼 뱀을 가까이 두었다고 한다.
이런 아내의 괴이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필립포스는 올림피아스를 멀리했다고 한다. 이렇게 둘 사이가 불화로 멀어지니 올림피아스는 자신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에게 더욱 집착하며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를 왕으로 만들 생각에 혈안이 된다.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의 유년시절
어느 날 말을 파는 상인이 필립포스를 찾아왔는데 부케팔로스라는 최고의 명마를 가져와 거래를 제안했고 필립포스를 은근히 자극 "이 마케도니아에서 이 말을 다룰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요 "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을 했고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모두 실패를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가 아버지를 졸라 그 말을 산다. 당시 이 명마(부케 팔로스)의 가격은 13 달란트=1000명 이상의 군인 연봉이었다.
아리스토텔리스와의 만남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는 말이 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모습을 관찰한 후 그림자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마침내 말을 길들인다. 필립포스는 이런 아들의 모습에 감격한다. 이런 아들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필립포스는 스승으로 아리스토텔리스를 데려온다.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 13살 때부터 3년간 각종 학문을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필립포스는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로 아들의 스승이 되면 왕권 강화 때 저항하던 귀족을 없애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을 파괴했던 필립포스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을 제건 해주는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왕궁에서 조금 떨어진 미에자라는 곳에 왕실학교를 세우고 그곳에서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친 학문은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청중을 설득하는 학문) 자연학, 생물학, 의학도 교육했다.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존경했다.
또한 알렉산더는 <일리아스> 책을 매일 읽을 만큼 좋아했고 책 속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를 롤 모델로 삼았다. <일리아스>는 최고의 전술 책이라 극찬을 했을 만큼 이 책을 보며 전쟁의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와 함께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지휘관 그룹이 될 사람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이 중에 알렉산더의 평생의 동지인 프톨레마이오스와 헤파이스티온과도 함께 공부를 했다. 특히 헤파이스티온은 알렉산더(알렉산드로스)와 각별한 사이인 동성애 사이로 평생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
이렇게 그들과 함께 동방 원정의 꿈일을 키워 나갔다.
아버지 필립포스는 공부가 아직 끝나지 않은 16세 알렉산더에게 섭정을 맡기고 전쟁에 나간다. 그 틈을 타서 주변국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16세 알렉산드로스는 단숨에 침략자들을 섬멸시켰다. 심지어 정복한 땅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알렉산드로폴리스라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아버지 필립포스의 죽음
어느 날 필립포스와 알렉산더는 함께 전쟁을 나섰다가 위험에 처한 아버지 필립포스를 알렉산더가 구해주면서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열등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필립포스가 왕권 강화를 위해 아탈로스 장군의 조카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식날 아탈로스 장군의 '이제야 말로 순수 혈통이 태어날 결혼식'이라는 도발적 언행에 알렉산더는 분노를 표출했고 이를 저지하던 아버지 필립포스까지 도발하면서 아버지에게 쫓겨난다.
그러나 필립포스는 마음을 바꿔 다시 화해를 시도 화해의 제스처로 아내 올림피아스의 남동생과 자신의 딸을 결혼시킨다. 그러나 이 결혼식날 필립포스는 전우이자 동성 연인이었던 파우사니아스에 의해 암살을 당한다.
20세 알렉산더 왕 등극
그 후에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즉위한 후 범인 파우사니아스를 처형하고 자신을 모욕했던 아탈로스도 제거한다. 이렇게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 후 기원전 336년 20세의 나이로 알렉산드로스는 왕위에 오른다.
주변국의 반응
필립포스와의 동맹국이 반발의 조짐을 보이자 알렉산더는 동맹국을 직접 설득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동맹국은 다시 알렉산더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일종의 군사 동맹인 코린토스 동맹을 맺게 된다.
페르시아의 2차례 그리스 침략
수백 개의 독립된 폴리스(도시)로 이루어졌던 고대 그리스는 페르시아 제국이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그리스의 도시(=폴리스)들을 정복 시도를 했고 이것을 아테네가 막아냈었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 마라톤 해변에 상륙한 페르시아 군대를 아테네는 홀로 페르시아 군을 성공적으로 물리친다. (마리톤 전투) 그 후 10년 뒤에 두 번째 침략이 영화 <300>의 배경이 되는 페르시아의 두 번째 침략전이다. 다시 침략한 페르시아를 육지에서는 스파르타가 막아내고 해상에서는 아테네가 막아낸다. (살라미스 해전)
알렉산더의 정복 전쟁
페르시아의 공격을 막아낸 그리스지만 전쟁 후에도 계속된 내전으로 혼란이 지속되었고 이런 내전을 계속 뒤에서 지원했던 페르시아였기에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정복하기를 원했다. 알렉산더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페르시아로 넘어가 22살 때부터 정복 원정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거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다레이오스의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의 알렉산더는 전쟁을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 전투가 바로 그라니코스 전투이다.
그라니코스 전투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수도 펠라에서 출발한 알렉산더는 배를 타고 페르시아 제국에 도착한다. 22살의 알렉산더를 애송이 취급한 페르시아 왕 다레이오스였다. 전투 불가의 나쁜 날씨를 뚫고 알렉산더는 전쟁을 치렀고 이 전쟁 중에 적군의 장군이 휘두른 도끼에 투구가 부서졌고 뒤에서 찌르려는 창에 맞을 뻔한 것을 클레이토스 장군이 막아내며 죽을 고비를 넘겼고 이렇게 맹렬한 기세로 싸운 알렉산더(알렉산드로)를 보고 적군은 사기가 꺾여서 도망치기 시작하며 전투에서 대승을 했다.
첫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제우스의 아들, 해방자라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알렉산더(알렉산드로)는 페르시아 심장부(이 소스)를 향해 돌진한다.
이소스 전투
이 전투에 페르시아 다레이오스는 직접 알렉산더(알렉산드로)를 저지하러 약 60만 병력과 함께 나온다. 수적으로 열세한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알렉산더(알렉산드로)는 연설을 한다.
"저기 앞에 있는 적들은 허수아비에 가깝다. 저들은 자신의 의지로 싸우지 않는다. 그러 저를은 싸우는 이유를 모른 체 다레이우스의 명으로 움직이는 노예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싸워야 할 이유를 알고 있다. 페르시아가 저지른 일을 갚아줘야 하는 대의로 전쟁을 하는 것이고 위대한 문명을 가진 그리스인이다. 위대한 문명을 야만인 페르시아인에게 가르쳐야 할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건 신의 명령이고 자유인 VS 노예의 전쟁이다. 너희들의 지휘관은 알렉산더(알렉산드로)이다. "
알렉산더(알렉산드로)는 이 전투에서 다레이오스만 잡으면 이긴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의 애마 부케팔로를 타고 갑옷과 투구를 번쩍거리며 오직 다레이오스만 향해 돌진한다.
다레이오스를 향해 돌진하는 알렉산더를 보고 다레이오스는 달아나버리면서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된다.
가우가멜라 전투
알렉산더(알렉산드로)의 군대는 남부로 진군하여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다. 이집트 지중해 남부 지역을 모두 점령한 알렉산드로스는 달아난 다레이오스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100만 명의 군사를 집결시킨 다레이오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편지를 보내 싸울 의지가 없음을 피력하지만 알렉산더(알렉산드로)는 이를 거절하고 수적으로 열세한 최후의 결전을 한다.
이소스 전투와 같이 오직 다레이오스를 향해 돌진하니 다시 한번 도망치기 시작하고 이를 본 알렉산드로스의 끈질기게 추격 히르카니아까지 쫓아간다. 그러나 이런 도망자 다레이오스를 본 같이 있던 베소스 무리의 손에 암살당하고 왕을 죽인 베소스를 잡아 죽이고 페르시아인들의 지지를 얻게 된다.
이렇게 3번의 전투로 페르시아를 정복하며 전투를 끝이 난다. 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빌론에 입성하는 알렉산더(알렉산드로)를 바빌론인들은 환영한다. 또한 그들을 야민인으로만 믿었던 알렉산더(알렉산드로)는 발전된 우수한 바빌로니아 문명을 목격하게 되고 새로운 문화 습득의 기회로 삼기 시작한다.
알렉산더 백전백승 비결
지적 호기심이 높았던 알렉산더(알렉산드로)는 단 한 번도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었다. 알렉산더 전투의 비결을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팔랑크스와 헤타이로이 전법
팔랑크스 전법은 테베의 에파미논다스에 의해 개발된 고대 보병 전법으로 알렉산더는 이를 잘 활용 전면의 적을 상대 할 때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법의 약점은 측면 공격 시 매우 불리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측면에 헤타이로이라는 기병대를 배치했다.
타협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것
정복 과정에서 협상을 맺은 동맹이나 프로로 잡힌 다레이오스 가족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에게 저항하던 밀레토스와 할리카르나소스처럼 친 페르시아 세력이 지배하던 도시는 아주 처참하게 짓밟아 버렸다.
마지막으로 신화를 잘 활용했다. 자신을 신격화(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신화를 적절히 사용했다.
이집트, 페르시아를 정복했으나 부하들의 반대에도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 인도 정벌에 나섰다. 그리고 인도에서 벌어진 전투, 낯선 인도에서 인도 왕 포루스와의 전투에서 처음 상대했던 코끼리 부대와 싸움에도 승리를 한다.
알렉산더(알렉산드로) 위기
클레이토스 죽음
알렉산더(알렉산드로)는 클레이토스에게 박트리아와 소그디아나를 맡기려 했으나 클레이토스는 저항했고 전투에서 자신을 구해줬던 클레이토스를 죽인고 만다. 그때부터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제거하기 시작하자 기나긴 원정과 지친 부화들의 불만과 반발심이 일어나고 결국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반란이 일어나자 길고 긴 12년의 원정을 마치고 부하들의 의견을 수렴해 바빌론으로 복귀를 결정하게 된다.
헤파이스티온의 죽음
알렉산드로의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헤파이스티온이 갑자가 사망하자 알렉산더(알렉산드로)는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 폭음으로 점점 쇠약해져 가기 시작했고 12일 동안 앓다가 결국 33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알렉산더(알렉산드로) 제국 분열
알렉산더(알렉산드로) 죽기 직전 가장 강한 자가 자신의 후계자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다아도코이라고 불리는 측근들의 싸움으로 인해 알렉산더(알렉산드로) 제국은 분열되었고 이 싸움은 40여 년간 계속되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알렉산드로) 대왕은 단순한 군사 정복이 아닌 정치적, 문화적 교류를 만들면서 세계화 시대의 막을 처음 연 인물이었고 알렉산더(알렉산드로) 사후부터 마지막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연합군 패배한 악티움 해전까지의 기간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한다.
알렉산더는 서양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이자 동서문화교류에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고 그리스 역사의 전설과 신화가 된 역사적 인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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