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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삼국지연 속 사마의 이야기 132-1

by 365 ^^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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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는 중국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삼국지 후한 말부터 서진 초까지의 역사를 토대로 나관중에 의해 웅장하게 구성된 역사 소설이다. 삼국지의 등장인물 수만해도 1400명이 이상이다. 600년 이상 독보적인 역사 베스트셀러이자 수많은 영웅호걸의 전쟁과 음모, 지략을 통해 지혜와 교훈을 주는 삶의 지침서이다. 100여년의 역사를 담은 삼국지에는 매력적인 영웅들이 등장한다.

 

촉나라 유비는 촉한 소열황제라 불리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초대 황제이다. 그는 타인에게 관대하고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품 덕분에 당대 최고의 책사 제갈량, 관우, 장비, 조자룡이 유비에게 충성을 받쳤다. 유비와 대립하는 최고의 맞수는 위나라의 조조이다.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로 위나라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뛰어난 지략을 가진 지도자였지만 매우 잔인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가차 없이 죽이고 뜻을 이루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이 밖에 오나라의 소권은 19세기 강동의 군주가 되었고 삼국시대 오나라의 초대 황제에 오른 인물이다. 

 

삼국지 속 많은 인물 가운데 삼국시대를 끝내고 통일을 이룬 인물은 조조의 책사 사마의이다.  사마의는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한 전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제갈량과 숙명의 라이벌을 이루며 삼국시대 후반부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후에 조조를 배신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사마의는 누구? 

조조가 사마의를 만나기 위해 걸린 시간은 무려 7년이었다. 사마의 집안은 한나라를 세운 공신 가문인 명문가 출신이었고 관료였던 사마의 아버지는 청렴결백하고 현명해서 주변의 존경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다.  원래 사마는 군사 책임자 관직명인데 '사마' 를 성씨로 쓸 정도로 대대로 군권과 밀접했던 집안이다. 사마의는 사마방의 8형제중 둘째로 태어난다. 

 

 

 

사마의는 어린시절부터 똑똑하고 눈에 띄는 인재였다. 그래서 가르치던 스스에게도 가장 총애받았던 어린 시절을 보낸다. 조조의 책사 순욱이 이런 사마의를 추천했고 비슷한 시기에 사마의 형 사마랑과 교류하던 최염이라는 사람도 사마의를 추천했다. 이에 22세때 사마의에게 관직을 내렸는데 그는 이를 거절했다. 당시 나라에서 관직을 거절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은 본인의 지병이나 부모님이 편찮은 경우였고 사마의는 자신이 풍비=관절염에 걸렸다고 하며 이를 거절했다. 

 

그렇게 7년이 흐르고 조조가 절대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하며 천하통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때 조조는 사마의에게 두번째 관직을 내리고 사마의는 이를 수락한다. 사마의 나이 29세때 였다. 

 

 

사마의 생존 비결

그런데 조조는 사마의가 관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마의를 경계했다. 이에 사마의는 눈치를 잘 살펴 하지 않던 일도 하면서 조조의 경계를 풀게 했다. 이후 조조는 자신의 세력을 탄탄하게 구축해나갔고 스스로 위나라의 왕을 자처하며 황제와 같은 권력을 쥐게 된다. 이때부터 사마의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시기 사마의가 내세운 생존 비결은 끝까지 참고 참는 것이었다.  

 

 

두번째 생존 비결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었다. 이것의 최대 피해자는 관우였다. 위와 촉의 국겨에 위치한 한중을 조조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후 2년간의 전투로 한중을 유비가 되찾게 된다. 이에 조조의 영향력 아래 있던 지방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조조는 반란을 제압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틈을 타고 위나라의 번성을 공격하고 승리하게 된다. 이에 조조는 관우를 피해 수도를 옮기자고 했고 이를 반대하는 신하들이 없었다. 그런데 이때 사마의가 수도를 옮기는 대신 배후의 적을 오나라 손권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조조에게 손권과 협상을 하여 관우가 죽으면 형주 땅을 나눠갖자는 것이었다. 

 

 

그러헥 219년 12월 관우는 손권에 의해 죽게 된다. 그 결과 위나라 조조는 직접 나서지 않고 촉나라 기둥같은 관우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이에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하겠다며 무리한 이릉전투를 벌이고 이 전투에서 대패하며 유비의 위세도 꺽이고 만다. 이 일을 계기로 사마의는 위나라에서 실권자로 부상하게 된다. 이때 사마의 나이는 40살이였다.  

 

그런데 이때 조조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게 된다. 이후 조조의 아들 조비가 위나라 왕으로 등극하고 어릴 때 조비의 스승이었던 사마의는 왕이 된 조비를 보좌하며 더 큰 권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조비도 즉위 6년 만에 사망한다. 이번에는 조조의 손자인 조예가 왕으로 등극하고 사마의는 세 번째 군주를 모시며 크게 인정받아 위나라 군부 4대 장군 중 하나인 표기대장군에 오른다. 이때 사마의 나이 47살이었다. 

 

위나라에서 사마의가 승승장구할 시기 촉나라에서는 유비가 죽고 그의 아들 유선이 즉위한 상황이었다. 유선은 아버지 유비에 비해 한참 능력이 모자란 아들이었다. 이를 알았던 유비는 재갈량에게 촉나라를 맡아서 다스려달라고 부탁했고 촉나라의 모든 국정은 제갈량을 거쳐 진행되었고 오나라만 손권이 여전히 살아남아있었다. 

 

 

 제갈량의 첫번째 목표는 사마의가 있는 위나라였다. 그래서 제갈량에게는 위나라의 군권을 쥐고 있던 사마의가 제거 대상 1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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