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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역사저널 그날

궁예 이야기

by 짱신나^^ 2023.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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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말기 귀족들의 수탈로 고통받던 민심은 궁예에게로 향한다. 

 

 

궁예 세력 확장 

궁예는 10대에 출가해 승려가 되었고 성인이 되어 큰 뜻을 품고 891년 지금의 안성 , 죽주의 호족 기훤 밑으로 들어갔으나 기훤은 궁예를 신임하지 않았다. 이에 892년 원주에 있는 호족 양길에게 가게 되고 양길은 기훤과 달리 궁예의 진가를 알아보고 강원도 지역을 평정하라는 미션을 준다. 이에 궁예는 양길 휘하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다. 원주를 출발할때 600여명의 군사였으나 강릉에 도착할때는 3500명의 병력으로 6배가 증가하였다. 이때부터 궁예는 자신을 장군으로 칭했다. 

 

 

궁예는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중 왕건을 만난다. 강원도 지역을 빠르게 정복한 궁예의 군세에 경기도 북부 . 황해도 호족들이 귀부하게 된다. 궁예는 왕건을 자신의 휘하로 받아들여 송악의 성주로 삼는다. 이때부터 궁예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왕건을 포섭하게 되니 한반도 중북부 지역을 장악하게 된 궁예였다. 그래서 강릉에서 송악으로 본거지를 옮기게 된다. 7년만에 양길의 세력보다 커진 궁예였다 .

 

 

899년 한반도 중부를 놓고 양길과 궁예가 전투를 벌이게 되고 궁예의 승리로 끝이난다. 

 

궁예의 수도 천도 

궁예가 송악으로 도읍을 옮긴 이유는 황해도. 경기도 북부 호족세력을 포섭하기 위해서였다. 궁예의 세력 확장과 건국 과정에서 큰 힘이 된 왕건 등의 패서 호족세력으로 인해 왕건의 입지와 위상이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이에 궁예는 904년에 고려에서 마진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송악에서 철원으로  궁예가 초창기 세력을 키웠던 곳으로 도읍을 다시 옮긴다. 

 

**마진은 불교 용어로 마하진단의 줄임말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마하=크다 . 마하 반야= 큰 지혜 진단=진인 (참된 사람) 이 머무는 곳 마하진단=큰 동방의 나라라는 뜻. 고려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 것은 고구려의 계승의식을 포기했다는 뜻인데 고구려계의 반발은 필연적이었다. 

 

궁예의 후고구려 건국 이후 곳곳에서 통일전쟁이 벌어진다. 913년 왕건은 조정의 가장 윗 자리 광평성의 수장인 시중의 자리에 오른다. 이후 궁예는 자신을 미륵으로 자처하면서 모든이들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이에 왕건은 정변을 일으키고 이소식을 듣고 궁예는 도망치다 백성들에게 살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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