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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ical spot signs15

남원 피바위의 진실과 황산대첩지비 고려말 왜구는 고려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약 169년 동안 왜구의 침략 횟수는 520회 이상으로 1380년 500척의 배로 고려를 침략한다. 당시 침략한 왜구의 수는 약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왜구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를 들쑤시면서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그 과정에서 포로로 잡은 아이들을 죽였으며 시체가 산을 이뤘을 정도로 처참했다. 왜구를 피해 물속에 뛰어든 여인 세명이 보인다. 고려말 왜구가 침입한 지역(빨간점) 어린아이를 제사 제물로 삼은 왜구의 끔찍한 만행 황산전투 이런 왜구를 막기 위해 당시 동북면을 방어하고 있던 이성계를 부른다. 그리고 이성계는 황산에서 왜구와 맞붙게 되는데 이것은 고려 역사상 왜구와 벌인 최대규모의 전투였다. 신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이성계가 이때 50여개의 .. 2022. 8. 7.
촉석루 논개 이야기는 사실인가? (의암 바위) (2) 진주성 이야기 일본군 장수를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 이야기는 사실인가? 2차 진주성 전투 후 진주는 일본군에게 완전히 함락되고 여러 장수가 진주의 남강에 충절을 위해 뛰어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 충절의 상징 논개의 출신에는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 노비, 관비라는 설이 있고 일본군 장수도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생사조차 불문명하다. (역사저널 367회 참조 ) 논개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조선시대는 유교의 영향으로 남존여비사상이 강했는데 이런 남성들에게 조차 차별받았던 여성들 마저 일본군에 맞섰다는 사실이 논개 설화로 전해졌다고 볼수 있다. 논개 설화는 진주성에서 싸웠던 조선의 백성의 상징인 것이다. 진주에가면 한번은 방문하는 진주성 안에 촉.. 2022. 7. 23.
진주성 장군들 (김시민, 황진) 이야기 아 진주가 유네스코 시티로 지정이 되었었구나 2019년에.. 김시민 장군 이야기 진주성 김시민 장군 동상으로 임진왜란 3대 대첩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나 끝내 적의 총탄에 이마를 맞고 숨지신 영웅. 忠武公 全時敏 將軍 청사에 빛나는 진주대첩을 쓰고 간 충두공 김시민 장군은 1554년 남 천안 병천에서 지정) 총감(中)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 1578년 무과에 금제, 훈련원·군기시(판관(判)을 거쳐 1591년 진주판관이 되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목사 (牧使)가 병으로 죽자 그 직을 대신하여 민심을 다독이고 성과 못을 수측하는 한편 무기를 정비하고 군사체제를 갖추어 사천 고성·진해· 지례 금산(山) 등지에서 승전고(勝戰)을 올리며 목사로 승진되었다. 그리하여 같은 해 10월 5.. 2022.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