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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reads (정치문화역사)

여성에 대한 성차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칠거지악 삼불거=삼불출 )

by 365 ^^ 2022. 5. 27.

여성에 대한 성차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고조선

여성에 대한 차별은 고조선때부터 존재했다. 여성이 불륜을 저지르면 처벌을 강력하게 했으나 남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청동기 시대 전쟁이 시작되고 칼과 권력을 가진 쪽이 남자였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고려시대

고려시대는 여성의 지위가 오늘날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았다. 

-여성도 호주 즉 한 집안의 주인이 될수 있었다. 

-제사도 아들, 딸이 번갈이 지냈다. 

-제산 상속도 아들 달 똑같이 권리가 부여

-이혼도 빈번했다. 

 

정치, 사회적 활동을 제외하고 고려의 여성은 남녀가 대등한 관계에 있었다. 

 

 

 

 

조선시대 

그러다 조선시대 전기는 성리학 정착의 과도기였고 조선 초기 가부장적 사회를 만들고 억압과 규제로 백성을 통제하려 했으나 잘 지켜지지 않아 성종시기(조선 9대임금) 에 이르러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고 풍속을 바로 잡기 위한 법인 경국대전을 만들며 조선은 철저히 부계사회 중심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성종은 성리학적 여성상을 확립시키기 위해 어우동을 간통죄가 아닌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협다는 강상죄를 물어 교형을 시키며까지 강력한 법을 시행했다.

 

성종(재위 1469~1496)때 여성 차별

이때부터 남자와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여성은 집에서만 있어야 했고 외출시에는 반드시 장옷 등을 쓰고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제혼한 여성의 자녀는 과거시험을 볼수도 없었다. 또한 여성의 정절을 미덕으로 생각해 정절을 지킨 여성에게 열녀문을 세워주었다. 이것이 지나쳐 모르는 남성이 여성의 팔을 잡았다고 해서 여성이 자신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자르는 모습이 풍속도에도 남아있다.  또한 여성의 이동 수단 가마를 사변을 가려 다니게 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전쟁을 치르면서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온 백성에게 각인시켰다. 

 

 

성리학적 여성상

 

삼종지도

조선의 여성은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 자식을 따라야 하는 부계가족의 절대적 복종과 순종이 당연한 미덕이었다. 그래서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통제된 조선의 여성들은 이름이 없었다. 그저 누구누구 아버지의 딸,  누구누구 남편의 아내, 아들 누구의 엄마로 불리며 자유를 상실한 채 살아야 했다. 

 

칠거지악 

조선시대 남편이 부인과 이혼할 수 있는 7가지 이혼사유가 있었는데 그것을 '칠거지악'이라고 했다. 말그대로 부인을 쫓아낼수 있는 7가지 잘못이라는 의미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부모를 잘 모시지 못하는 것 

-아들을 못낳는 것

-부정한 행위를 하는 것(음탕함)

-질투 하는 것

-유전병이 있는 것 (나병, 간질등)

-말이 많은 것

-도둑질 하는 것

 

 

삼불거=삼불출

그러나 칠거지악 중 하나에 속해있더라고 다음의 세가지 경우에는 아내를 내쫓지 못하도록 했다. 

- 내쫓아도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을 때

-함께 부모의 삼년상을 치른 경우

-전에 가난했으나 혼인 후 부자가 된 경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나 드라마 속 조선의 여인상은 대부분 성종때 만들어졌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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