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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 리뷰/벌거벗은 세계사

미국 남북전쟁 간략 정리 (섬터 요새공격~게티즈버그 전투)

by 짱신나^^ 202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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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은 미국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이다.1861년부터 4년간 약 200여차례 넘게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에 서 약 60만 명이 사망한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 이전에 미국이 참전 했던 모든 전쟁을 사망자수보다 많은 수치이다. 또한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이 받았던 재산 피해를 능가하는 참혹했던 남북 전쟁이다.

 

19세기 미국의 남부와 북부는 노예제를 두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분열되기 시작한다. 미국 민주당은 노예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노예제를 지지하던 민주당은 온건파와 급진파로 분열되고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공화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양당 체제가 성립 된 것이다.   

 

 

1861년 3월 노예제를 반대하는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니 연방정부와 주 정부 사이의 갈등으로 남부는 연방에서 탈퇴, 남부연합을 결성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남부 대통령으로 뽑는다.  

 

 

 ▶1860년 11월 6일 링컨 대통령 당선 

 

남부 민주당의 분열과 북부 공화당의 높은 지지율로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 노예제를 유지하고 싶은 남부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노예제 폐지를 찬성하는 링컨 대통령 취임전부터 연방을 탈퇴하기 시작한다.

 

1860년 남부 연방 탈퇴

링컨이 대통령이 되자 남부의 연방 7개 주가 연방제에서 탈퇴를 한다. 그 중에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남과 북의 정치적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던 곳으로 가장 먼저 연방을 탈퇴한 후 1860년 12월 이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창설한다.

 

 ▶1860년 12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최초 연방 탈퇴

 ▶1861년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 탈퇴

 

 ▶1861년 2월 18일 남부 연합 창설/ 남부연합 대통령으로 제퍼슨 데이브스가 취임

 ▶1861년 3월 4일 북부 링컨 대통령에 취임

 

 

 

 ▶1861년 4월 12일 남부연합군 섬터요새 공격

미국 연방군의 요새였던 섬터를 남부 연합군이 선제공격을 하면서 남북전쟁이 시작된다. 

 

1800년도에 찰스턴항은 미국에서 제일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고  섬터 요새는 찰스턴항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인공섬이었다. 

 

전력 상으로는 북부가 월등히 우세했다. 전력 면에서는 남부는 처음부터 승산이 없었던 전쟁이었으나 사기와 정신력에서는 북부를 앞선다고 믿고 있었던 남부연합이다.

 

남북 전력 비교 

 

남부의 입장에서는 독립을 쟁취하고자 정신력으로 맞서야 했던 상황이었고 북부에서도 남부의 영토를 장악해야 하는 부담스러웠던 전쟁이었다.

 

당시 상황은 영국 프랑스 등이 남부의 면화에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외국의 원조를 받는데 남부가 상당히 유리한 상황이었다. 전쟁 초반에 남부연합은 기세가 강했고 기세를 몰아 외교적으로 북부를 압박하기 시작하였다. 1861년 남부연합은 영국과 프랑스로 외교 특사를 보내 외국으로부터 남부 연합에 독립을 승인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링컨이 노예 해방령을 선포하면서 전세는 역전이 되고 남부는 외교적으로 고립이 되어 버린다. 

 

[16-2]에이브러햄 링컨 생애 (노예 해방령~ 게티즈버그 연설, 암살)

 

남북의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만만치 않게 버티고 있던 남부 연합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세에 몰리게 되고 이때 북부가 승기를 잡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펜실베이나 주는 남북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게티즈버그 전투(1863. 7월 1일 ~ 1863. 7월 3일)가 벌어진 곳이다. 당시 펜실베니아는 자유의 상징인 곳으로 미국에서 여성 투표권을 가장 먼저 부여했던 곳이고 독립전쟁 당시 미국의 여러 주가 연합해서 참전할때 임시정부를 세우고 나라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주이고 요즘은 복싱 영화 <rocky> 촬영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 밀술관 앞 록키 동상

 

▶게티즈버그 전투 (Battle of Gettysburg) 

(1863. 7월 1일 ~ 1863. 7월 3일)

남북전쟁의 최대의 격전지이자 흐름을 바꾼 가장 중요한 전투이다. 수세에 몰렸던 남부가 승부수를 던지는 곳으로 북부군이 계속해서 남하를 하자 불리한 상황에 노인 남부 연합은 강하게 맞서 총력전을 벌이게 된다. 수많은 군인이 게티즈버그의 집결하게 된다. 남부 연합에 병력은 약 75,000 명, 북부 연방의 병력은 약 100,000명이였다.

 

치열한 격전 끝에 북군이 승리를 쟁취한다. 이 전쟁에서 남북의 사상자는 약 5만 명중 남부연합의 사상자 약 2만 8천 명, 북부군의 사상자 약 2만 3천명으로 게티즈버그 전투는 남과 북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남부연합의 사상자 약 2만 8천 명, 북부군의 사상자 약 2만 3천명

 

게티즈버그 전투 후에도 남북전쟁은 2년 더 이어졌고 북군의 총공세로 남부의 수도 ‘리치먼드’ 함락과 함께 남부연합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면서 4년간의 남북전쟁은 막을 내린다.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약 4,000,000 명의 노예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다.

 

[16-3]

 

 

 

[16-1]미국 흑인 노예 제도 역사

 

미국 흑인 노예 제도 역사

노예 제도의 역사  1619년 최초의 흑인 노예 거래 1619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버지니아 제임스타운 어느 해안가에 배 한 척이 도착한다. 이 배의 정체는 네덜란드 깃발을 단 영국 무장 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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